오래된 책 [Doctor's Dilemma]의 내용을 강명신 교수가 저자인 철학자 고로비츠 교수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각색하여 세미나비즈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강: 이제 “도덕적 갈등” 두 번째 시간입니다.

 

샘: 7장은 들어가는 말이 좀 길긴 했죠?

 

강: 이제 “도덕적 갈등” 두 번째 시간입니다.

 

샘: 7장은 들어가는 말이 좀 길긴 했죠?

 

강: 의료와 의료정책에서 도덕적 문제가 해결될 수는 있는 것인지, 어느 정도나 해결이 가능한지, 그리고 도덕철학은 거기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라고 하셨어요.

 

샘: 그리고 그 질문이 어째 좀 부정적인 답을 예상한 것으로 보이죠?

 

강: 예, 당연히 그랬어요. 이어서 마치 종교학자처럼 세속의 시대라고 말씀하셨어요. 문제의 답으로 이끌, 어떤 주도적인 도덕적 지향점이 없어서 도덕적 갈등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시대라고요.

 

샘: 도덕적 다양성 때문에 도덕적 카오스를 댓가로 치른다고 봐요. 늘 그러진 않았죠. 예전에는. 하나의 도덕적 전망이 확실히 우세해서 분명한 답이 있던 시대들이 있었으니까요.

 

강: 선생님은 랍비 이야기를 하셨는데, 우리나라에도 동네유지라고 불리는 분들이 비슷한 역할을 하셨어요. 그러면요, 선생님. 도덕적 카오스라고까지 표현하신 도덕적 갈등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샘: 그래요. 우선, 지금처럼 도덕적 전망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을 도덕적인 퇴보로 인해 생긴 현상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죠.

 

강: 예 많아요. 아, 옛날이여 관점이죠. 공통의 전망이 분명한 답을 냈었는데 그런 시대가 사라졌다고 애도하는 시각이죠. 그러면 다른 시각은요?

 

샘: 확정적인 답에 도달할 수 없을지라도 도덕적 문제를 명료화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낙담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죠. 나도 이 의견에 찬성합니다.

 

강: 예, 선생님. 언젠가 과학과 공학 분야의 교수들과 도덕철학 여름단기집중세미나 같은 행사를 하셨나 봐요. 생각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도 여름방학 때 빈 강의실에서 학우 몇 명과 모기를 피해가며 철학책 강독하던 시절이 그립거든요. 그때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샘: 3주 동안 집중적으로 강의도 듣고 관련된 자료도 읽는 코스였어요. 과정이 다 끝나갈 때였는데 생물학자 분이 오더니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뭐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만 분명해진다고요. 세미나가 다 끝나가고 있는데 오히려 더 모르겠다고요.

 

강: 예, 그런 현상에 대한 교육학자들의 개념도 있더라고요. 배우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헷갈리는 단계가 있다는 거였어요. 사실 그분들도 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배우고 도리어 불편해지신 것 같네요. 강의실에서도 많이 일어나는 일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게 위안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적어도 나한테만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까요.

 

샘: 자꾸 이야기하지만, 도덕철학이라는 것이 위안을 주는 게 주목적은 아니지요.

 

강: 예. 도덕판단이나 도덕추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도덕적 의사결정을 좀더 잘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죠.

샘: 그 중에서 7장의 주제는 후자입니다.

 

의료와 의료정책에서 도덕적 문제가 해결될 수는 있는 것인지, 어느 정도나 해결이 가능한지, 그리고 도덕철학은 거기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라고 하셨어요.

 

샘: 그리고 그 질문이 어째 좀 부정적인 답을 예상한 것으로 보이죠?

 

강: 예, 당연히 그랬어요. 이어서 마치 종교학자처럼 세속의 시대라고 말씀하셨어요. 문제의 답으로 이끌, 어떤 주도적인 도덕적 지향점이 없어서 도덕적 갈등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시대라고요.

 

샘: 도덕적 다양성 때문에 도덕적 카오스를 댓가로 치른다고 봐요. 늘 그러진 않았죠. 예전에는. 하나의 도덕적 전망이 확실히 우세해서 분명한 답이 있던 시대들이 있었으니까요.

 

강: 선생님은 랍비 이야기를 하셨는데, 우리나라에도 동네유지라고 불리는 분들이 비슷한 역할을 하셨어요. 그러면요, 선생님. 도덕적 카오스라고까지 표현하신 도덕적 갈등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샘: 그래요. 우선, 지금처럼 도덕적 전망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을 도덕적인 퇴보로 인해 생긴 현상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죠.

 

강: 예 많아요. 아, 옛날이여 관점이죠. 공통의 전망이 분명한 답을 냈었는데 그런 시대가 사라졌다고 애도하는 시각이죠. 그러면 다른 시각은요?

 

샘: 확정적인 답에 도달할 수 없을지라도 도덕적 문제를 명료화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낙담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죠. 나도 이 의견에 찬성합니다.

 

강: 예, 선생님. 언젠가 과학과 공학 분야의 교수들과 도덕철학 여름단기집중세미나 같은 행사를 하셨나 봐요. 생각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도 여름방학 때 빈 강의실에서 학우 몇 명과 모기를 피해가며 철학책 강독하던 시절이 그립거든요. 그때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샘: 3주 동안 집중적으로 강의도 듣고 관련된 자료도 읽는 코스였어요. 과정이 다 끝나갈 때였는데 생물학자 분이 오더니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뭐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만 분명해진다고요. 세미나가 다 끝나가고 있는데 오히려 더 모르겠다고요.

 

강: 예, 그런 현상에 대한 교육학자들의 개념도 있더라고요. 배우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헷갈리는 단계가 있다는 거였어요. 사실 그분들도 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배우고 도리어 불편해지신 것 같네요. 강의실에서도 많이 일어나는 일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게 위안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적어도 나한테만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까요.

 

샘: 자꾸 이야기하지만, 도덕철학이라는 것이 위안을 주는 게 주목적은 아니지요.

 

강: 예. 도덕판단이나 도덕추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도덕적 의사결정을 좀더 잘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죠.

 

샘: 그 중에서 7장의 주제는 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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