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코코슈카 (1886-1980)

[큐피드와토끼가  있는  정물]  1913-14,  캔버스에  유채, 90×120cm,  취리히 쿤스트하우스미술관오스
[큐피드와토끼가 있는 정물] 1913-14, 캔버스에 유채, 90×120cm, 취리히 쿤스트하우스미술관오스

오스카 코코슈카 Oskar Kokoschka는 1886년 오스트리아 푀힐라른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대부분을 빈에서 보낸 뒤 빈의 장식예술학교에 들어가 회화를 공부했으나 1908년 학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작품을 전시했다는 이유로 갑작스레 퇴학당했다.

이 무렵 코코슈카는 건축가인 아돌프로스와 친한 친구사이였는데, 로스는 코코슈카에게 흔들림 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었다. 활동 초기 코코슈카는 화가뿐만 아니라 시인과 극작가로도 활약했으며 특히 표현주의 연극의 창시자라는 평을 받았다.

그의 첫번째 개인전은 1910년 베를린의 파울카시 레르화랑에서 열렸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전까지 코코슈카는 베를린과 빈에서 살았지만 전쟁이 터지자 자원 입대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큰부상을 입고 회복기를 거치는 동안 드레스덴으로 이주, 1919년 드레스텐 예술 아카테미의 회장이 되었다.

1931년 나치가 집권하면서 독일을 떠나 프라하로 옮겨갔다. 독일에서 그의 작품들은 ‘타락했다.’ 는 이유로 공공 전시가 금지됐다. 코코슈카는 1938년 영국으로 망명, 영국 시민권을 얻었고 1980년 스위스 몽트뢰에서 사망했다.

<큐피드와 토끼가 있는 정물〉을 그렸을 당시 코코슈카는 겨우 스물일곱 살이었다. 이 작품은 그의 작업중 에서도 가장 이상하고 수수께끼같은 작품으로 남아 있다. 정물화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은 움직이고 있거나 혹은 어느 때라도 충분히 움직일 수있는 것들이다. 명확한 주제도, 내거티브도 없이 시각적 알레고리로 온통 뒤덮여 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그림의 주인공이자 가장 활동적인 대상이기도 한 줄무늬 고양이(혹은 어린 호랑이)가 제목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00년 직후 빈시민이었다면 누구나 그러했듯 코코슈카도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1900)을 읽었으며 이때부터 그의 시에는 몽환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알마말러의 초상 ], 1912-13, 캔버스에 유채,62×5 6cm, 도쿄 국립현대미술관
[알마말러의 초상 ], 1912-13, 캔버스에 유채,62×5 6cm, 도쿄 국립현대미술관

이 무렵 코코슈카의 시는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적 요소들, 성적 굴복과 까닭없는 폭력의 악몽과도 같은 환상으로 가득하다. 그의 희곡들ㅡ예를 들면 훗날 파을힌테미트가 오페라로 개작하기도 한 『살인: 여인들의 희망』 같은 단편들은 동물적인 본능의 먹이가 되어버린 개인들로 북적거린다.

그렇기에 〈큐피드와 토끼가 있는 정물〉에 적극적인 상징주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상당히 놀랍다. 가장 겉으로 보이는 연관성은 그때 막 실패로 끝난 알 마말러(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아내)와의 사랑일 것이다.

코코슈카의 어머니는 두사람의 관계를 맹렬하게 반대하였으며, 심지어 알마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큐피드는 확실히 우울한 모습이며 모든 행위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고양이-입 밖으로 말할 수는 없었겠지만 아마 코코슈카의 어머니를 가리키는 듯하다-는 무대 중앙을 차지하고 있지만, 토끼-코코슈카 자신-는 그저 시무룩하게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뿐 완벽하게 정적이다(이 때문에 제목에 ‘정물’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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