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 들로네 (1885-1941)

[시내를 향한 창문] 1912, 캔버스에 유채, 채색한 소나무 프레임, 46×40cm,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시내를 향한 창문] 1912, 캔버스에 유채, 채색한 소나무 프레임, 46×40cm,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예술이 은근함의 한계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우리의 조화로운 시각, 즉 명료함에 의지해야 한다. 
명료함이란 비율의 균형이 있는 색채이다. 비율의 균형은 한 가지 행위에 동시에 연관된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된다.  이 행위는 빛의 조화롭고 동시적인 움직임으로, 유일한 현실이기도 하다.”
- 로베르 들로네 -

로베르 들로네 Robert Delaunay는 1885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학업을 마친 뒤, 무대 디자인 회사에 도제로 들 어갔다. 1903년 처음으로 회화에 손을 대기 시작하자마 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초기 작은 스타일 면에서 폴 세잔과 미셸 외젠 슈브뢰이의 색채 이론의 영향을 받 은 신인상파에 가까웠다. 

1907년부터 1908년까지 랑(라온)에서 병역 복무를 마친 뒤 파리로 돌아와서는 입체파의 파도에 횝쓸렸다. 1909년 〈에펠탑〉 연적의 첫 번쩨 작품을 제작했다. 이듬 해 러시아 예술가 소니아 테르크와 결혼했다. 

[숲속의 에펠탑] 1910, 캔버스에 유채, 126.5×93cm,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숲속의 에펠탑] 1910, 캔버스에 유채, 126.5×93cm,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1911 ~1912년 바실리 칸딘스키 초청으로 뮌헨에서 개최된 제1 회 청기사 전람회에 참여 했다. 최초의 개인전 은 1912년 파리의 갤러리 바르바장주에서 열렸는데 같은 해에 〈창문〉 연작의 첫 번째 작품을 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들로네 가족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머물렀다. 이때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레오니드 마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과 만나 가까운 사이가 되 었으며, 발레 뤼스를 위해 의상과 무대 배경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전후에는 많은 공공 작품을 의뢰받아 제작하기도 했다. 들로네는 1941년 몽폘리에에서 사망했다.

[생-세브랭 성당 No. 3 ], 1909-10, 캔버스에 유채, 114×88.5cm,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생-세브랭 성당 No. 3 ], 1909-10, 캔버스에 유채, 114×88.5cm,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창문> 연작은 들로네 예술의 진화 과정에서 매우 중 요한 순간을 차지한다. 초기 의 인상주의, 디비조니즘, 그리고 큐비즘의 실험들이 한데 모여 들로네 고유의 무엇인가를 형성하고 있다.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기 욤 아폴리네르는 재빨리 그 독창성과 중요성을 인식하고는 그 가벼움과 서정성, 음악성에 어울리는 ‘오르피 즘’이라는 명칭을 붙여주었다(오르피즘’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인이자 음악가 오르페우스의 이름에서 기인했다)

빛이 건축과 실내 공간의 형태와 색채에 가져오는 변화에 매료된 들로네는 파리의 생-세브랭 성당의 스테인드글 라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서 얻은 영감을 그렸다. 그는 이미 1909년과 1910년에도 같은 실내를 다양한 버전으로 그린 바 있는데, 하나같이 둔감한 무채색에 큐비즘 스타일을 고집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후기의 작품들 은 모두 색채와 빛, 혹은 빛남과 투명함이다.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앞으로 나섰다가 뒤로 물러서는, 분광 을 조절한 반투명한 겹겹의 색채충만이 있을 뿐이다. 

<시내를 향한 창문> 전반에서 느껴지는 채색된 이미지는 캔버스 가장자리와 같은 높이로 끼운 채색 프레임으로 더욱 강조된다. 작품의 표면은 일정하나 가로질러 흐르고 프레임 안팎을 들고나는 공간을 인지할 수 있다. 

이러한 장치는 제목(‘바깥세상이 보이는’이 아닌 ‘바깥 세상을 향한’)에 내재하는 교묘한 모호함에 실제적인 포인트를 준다. 이러한 내부와 외부의 융합은 작품에 재스퍼 존스의 초기납화 작품표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적으로 굴절된 형식적인 복잡함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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