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그리스 (1887-1927)

[ 신문이 있는 정물 ] 1916, 캔버스에 유채, 73×60cm, 워싱턴 DC, 필립스 컬렉션
[ 신문이 있는 정물 ] 1916, 캔버스에 유채, 73×60cm, 워싱턴 DC, 필립스 컬렉션

후안 그리스(Juan Gris)는 1887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1902년부터 1904년까지 예술제조학교에서 테크니컬 드로잉을 배운 뒤 호세 모레노카르보네로의 스튜디오에서 회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1906년 파리로 이주, 앙리 마티스, 조르주 브라크, 페르낭 레제등 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는 「르리아Le Rire」나 「르 샤리바리 Le Charivari」 같은 풍자 잡지의 삽화가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같은 시골 출신인 파블로 피카소의 권유로 1910년 화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맨 처음에는 분석 입체파스타일로 그렸으나 1910년대 중반 자신만의 합성입체파를 창시하기에 이르렀다. 

[책 ]1911, 캔버스에 유채, 55×46cm, 파리, 조르주 퐁피두 센터, 국립근대미술관
[책 ]1911, 캔버스에 유채, 55×46cm, 파리, 조르주 퐁피두 센터, 국립근대미술관

1922년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를 위하여 발레 배경을 제작하기도 했다. 1924년 그라스는 소르본에서 그 유명한 ‘회화의 가능성’을 강연했다. 1927년 파리의 불로뉴-쉬르센 지 에서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후안 그리스는 입체파 삼총사 중에서 가장 끈기있고 자신만의 특색을 지닌 화가였다. 그는 인생에서 화가로 보낸 길지 않은 시간 대부분을 합성 입체파풍의 정물을 그리는데 쏟았다. 브라크와는 막역한 사이였고 피카소를 숭배했지만 두 사람과는 전혀 다른 화가로 역사에 남았다. 이러한 차이점은 1910~11년 그리스가 제작한 분석 입체파 작품들에서 드러난다.

그리스의 <책> (1911) 과 같은 해에 그려진 피카소의 <럼주병이 있는 정물>을 비교해 본다면 사물에 대한 완연히 다른 접근 방식을 알 수 있다. 

피카소가 기꺼이 병을 깨뜨리고 그 파편을 캔버스 공간 전역에 마구 흩어 놓았다면 그리스는 각 사물의 물질적 순수성을 지키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파블로 피카소 [ 럼주 병이 있는 정물 ] 1911, 캔버스에 유채,  61.5× 50.5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파블로 피카소 [ 럼주 병이 있는 정물 ] 1911, 캔버스에 유채, 61.5× 50.5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비록 그가 그린 커피포트나 주전자, 컵이 다양한 관점에 따라 개조되면서 이리저리 꽉 짜인 느낌을 받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그림 속 다른 사물들로부터 확실하게 떼어 놓는 현실적인 경계선이 있는 것이다.

사물의 순수성에 대한 그리스의 애착은 1916년 경에 제작한 일련의 합성 입체파 정물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이 중 <신문이 있는 정물>은 가장 우아하고 명료한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에서는 각각의 사물에 존재하기 위한 고유의 기하학적 공간이 주어졌다.

리큐르 잔은 투명한 튜브 속에서 있지만 관점을 바꾸어 위에서 테이블을 내려다보면 스스로 분해되고 있는 것은 잔이 아니라 튜브이다. 

또한 그리스는 과일 그릇에도 똑같은 장치를 적용했다. 모든 형상의 조합ㅡ투명하지 않은 부분이 자르고, 접고, 찢어 붙인 종이의 모습을 하면서 평탄함은 거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지닌다.

전반적인 정확성과 도면과 입면도 사이를 손쉽게 드나드는 방식(특히 그림의 왼쪽 에서 찾아볼 수 있다)은 공학 제도사였던 젊은 날의 경 험 때문이리라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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