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칸딘스키 (1866-1944)
1910년 처음으로 완전히 추상적인 수채화를 완성했으나, 그의 대작에서 모든 교묘한 참조의 흔적들이 사라진 것은 1914년에 이르러서이다.
이 과도기동안 칸딘스키는 주로 추상적인 시각언어를 탐구하는데 가장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풍경화에 몰두하는 동시에, 식별할 수 있는 사물의 어떠한 개념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는 비형태부여를 선호하기는 했지만 마지막 한걸음을 내딛기 위한 견고한 이론적인 토대가 필요했다.
블라바츠키 부인이나 루돌프 슈타이너의 신지학 Theosophic』 (1904) 등 철학과 신지학지식을 바탕으로 한 저술을 통해 스스로 이러한 배경을 제공하고자하기도 했다. 특히 큰 영향을 미친 것은 1907년에 처음 출간된 빌 헬름 보링거의 고전 『추상과 감정이입 Abstraction and Empathy』이었다.
칸딘스키는 ‘예술작품은 자연과 같은 수준의 독립적인 유기체이다.’라는 보링거의 주장에 매우 감동을 하였다.
<녹색 중심부가 있는 회화>는 칸딘스키가 묘사적이고, 자기언급적인 제목을 붙인 최초의 작품 중 하나이다.
이보다 앞선 작품들은 대부분 <즉흥 6(아프리카)>(1909) 같은 제한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장소의 이름을 덧붙인 포괄적인 제목이거나 혹은 <교회가 있는 풍경 >(1913)처럼 풍경속에 등장하는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제목이었다.
칸딘스키의 추상 이론에서 핵심은 다른 어떤 것을 가리키지 않고도 예술작품의 외형적 형태를 결정할 수 있는 ‘내적 필요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이란 우선 자신의 ‘내적 소리’를 확립하고 지속적인 접촉을 함으로써 그 시각적인 면을 형태와 색채로 캔버스 위에 풀어 놓는 것이다.
간신히 인식할 수 있는 현상의 존재를 암시하는 <녹색 중심부가 있는 회화>에서 처럼 자연 질서와 유사한 이미지들 파란 부분은 하늘처럼 보이고 어떤 형상은 인간이나 물고기처럼 보이고 - 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화가가 의도 한 바는 아니다.
이 작품에서는 모든 것 이 공간 속에서 고정된 - 오른편 1/3가량을 가로지르는 마치 커튼 같은 빨강의 보조부로 인해 안정된 - 녹색 중심부 주위를 빙빙 돌고 있다.
나머지 형상들 역시 모두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추상화의 시작
1888년 퐁타벤의 폴 고갱 문하에서 작업하고 있던 폴 세뤼지에는 거의 완전한 추상에 매우 근접한 <부적 >을 완성했다.
그러나 완전한 추상은 그의 목표가 아니었다. 사실 예술가들이 추상을 자신들의 창조적인 의도에 매우 중요한 무엇이라고 여긴 것은 20세기 초반에 접어들어서였다.
칸딘스키는 1912~13년경 추상화로 옮겨왔다. 1912 년 프란티세크 쿠프카가 최초의 완전한 추상화를 파 리에서 선보였다.
1913년 역시 프랑스에서 로베르 들로네가 그의 첫 번째 ‘환형 형상circular form’ 혹은 ‘디스크 회화’를 전시했다. 네덜란드에서는 1905년에 시작된 기나긴 과도기를 거쳐 1914년, 피트 몬드리안이 그의 첫 번째 ‘비형태부여’ 회화를 내놓았다.
러시아에서는 1915년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기하학 적이고 지상주의적인 ‘비구상 작품들을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