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브라크 (1882-1963)

[정물 : 그날]  1929, 캔버스에 유채, 115×146.7cm,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정물 : 그날] 1929, 캔버스에 유채, 115×146.7cm,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조르주 브라크 Georges Braque는 1882년 아르장퇴유-쉬르-센에서 태어났다.
르아브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에콜데 보자르의 저녁반 수업을 들었다. 도장 회사를 운영하던 브라크의 아버지는 미장장인과 함께 아들을 파리로 유학을 보냈고, 브라크는 1901년 숙련공 자격증을 취득했다.

1년 후 회화를 공부하기 위해 윙베르 (Humbert) 아카데미에 입학했는데 이 곳에서 마리로랑생과 프란시스피카비아를 만났다. 야수파에 시선을 돌려 1907년 살롱데 쟁데팡당에 처음으로 출품, 저명한 화상 다니엘-헨리 칸바일러의 이목을 끌었다.

1909년부터 브라크는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작업하며 선의의 경쟁을 통해 입체주의를 발전시킨다. 
 

파블로 피카소 [석고 두상이 있는 스튜디오]  캔버스에 유채, 98×131cm, 뉴욕, 현대미술관(MoMA)
파블로 피카소 [석고 두상이 있는 스튜디오] 캔버스에 유채, 98×131cm, 뉴욕, 현대미술관(MoMA)

이들의 공동 작업은 1914년 브라크가 프랑스군에 입대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1915년 부상으로 전역한 브라크는 회복기간을 거쳐 1917년, 이번에는 후안그리스와 함께 작업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약 10년 동안 함께 작업하며 합성입체주의를 보다 세련된 경지로 이끌었다.

브라크는 제 2차 세계대전 기간을 파리에서 보냈다. 말년에 건강이 나빠져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못했으며 1963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브라크의 합성 입체파정물은 고유한 특징이 있어 그와 공동작업한 적이 있는 또다른 입체파의 거장들, 파블로피카소나 후안그리스의 작품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피카소의 정물, 예를 들면 〈석고 두상이 있는 스튜디오>(1925)와 같은 작품은 색상의 현저한 대비로 인해 꿰뚫린 거의 산산이 부서진 듯한 느낌이지만 브라크의 정물은 거의 과묵에 가까울 정도로 가라앉아 있다. 가령 후안그리스가 말년에 그린 정물 <푸른 천〉(1925)이 거의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세심하게 조절한 색조조합에 의존하고 있다면 브라크는 색조를 패턴으로 사용, 은근히 신랄한 색채의 불협화음으로 자 신의 정물을 보다 생기발랄하게 한다. 
 

후안 그리스  [ 푸른 천 ]  1925, 캔버스에 유체, 81×100cm, 파리, 조르주 퐁피두 센터, 국립 근대 미술관
후안 그리스 [ 푸른 천 ] 1925, 캔버스에 유체, 81×100cm, 파리, 조르주 퐁피두 센터, 국립 근대 미술관

배경을 지배하는 옐로 그린, 그리고 그을린 듯한 오커-브라운의 부조화로 인해 불편함이 느껴진다. 또한 브라크는 테이블위에 배열해 놓은 일련의 사물들에도 자극적인 색상을 도입했다. 자줏빛을 띤 회색의 천 조각은 물병옆면을 타고 흘러내려 테이블 위에 그림자의 웅덩이를 만들며 그늘진 레몬색 과일, 빵 부스러기와 불편한 부조화를 이룬다. 

브라크는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작이란 모든 개념이 지워지고 오직 불안정한 느낌만이 남아있는 ‘지적 공허’에 도달한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물: 그날> 같은 작품을 보면 그에게 있어 느낌이란 색채의 상호작용, 그리고 보기드문 색상 조합의 창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것 같다.

저작권자 © 덴탈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