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몬드리안 (1872-1944)

[파랑과 노랑이 있는 구성] 1935, 캔버스에 유채, 73×69.6cm, 워싱턴 DC, 스미소니언협회 허쉬흔 미술관 & 조각정원
[파랑과 노랑이 있는 구성] 1935, 캔버스에 유채, 73×69.6cm, 워싱턴 DC, 스미소니언협회 허쉬흔 미술관 & 조각정원

1924년에서 1925년 사이 파리에서 테오반 두스부르흐와 몬드리안이 결별한 것은 흔히반두스부흐가 신조형주의의 형식적 어휘에 대각선을 추가했기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습작을 통해 몬드리안은 사물의 자연적, 영적질서안에서 ‘수직적인 인간의 위치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믿은 현실의 모델(세상의 철학과 관점)에 도달했다.

그는 반두스부르흐의 시도가 이 모델을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보았고, 이러한 관점은(그로 인한 결과가 좋든 나쁘든 간에) 1925년부터 1930년대까지 빈무스부르흐작품에서 일어난 진화로 증명되었다.
 

[빨강과 파랑이 있는 구성] 1936, 캔버스에 유채, 98.5×80.5cm, 슈투트가르트 국립 미술관
[빨강과 파랑이 있는 구성] 1936, 캔버스에 유채, 98.5×80.5cm, 슈투트가르트 국립 미술관

1930년이 되자, 반두스부르가 <역구성 XIII>(1925- 26)에서 보여준 순수 대각선사용은 <동시발생 역구성〉(1929-30)의 보다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다이내믹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반면 몬드리안은 구성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가장 ‘청교도’적 시기에 접어 들고 있었다.

1930년대 중반은 몬드리안이 신조형주의 혹은 데스테일의 진화한 어휘(세심하게 배치한 수직선과 수평선의 교차와 정확하게 측정한 원색)를 가장 간결하게 그리고 가장 세련되게 구사한 시기였다. 
 

테오 반 두스부르흐  [역구성 XIII] 1925-26,  캔버스에 유채, 50×50cm, 베네치아,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테오 반 두스부르흐 [역구성 XIII] 1925-26, 캔버스에 유채, 50×50cm, 베네치아,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파랑과 노랑이 있는 구성>이나 <빨강과 파랑이 있는 구성>(1936)에서 검정의 선 요소들은 흰 바탕에 견주었을때 보다 덜 침입적으로 보이게끔 굵기가 더 가늘어졌다. 그 결과 바탕의 하양은 존재감과 강렬함을 얻었으며 채색된 부분은 더 생기발랄해졌다.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하얀바탕의 해석은 작품자체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테오 반 두스부르흐  [동시 발생 역구성] 1929-30, 캔버스에 유채, 50×50cm, 뉴욕 현대미술관(MoMA)
테오 반 두스부르흐 [동시 발생 역구성] 1929-30, 캔버스에 유채, 50×50cm, 뉴욕 현대미술관(MoMA)

 

복제품에서는 종종 흰 바탕위에 검은 선을 직접 그린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작품에서는 하얀바탕이 될 부분과 검은 선이 될 부분을 정확하게 나누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각각의 색을 채워 넣음으로써  하양과 걱정이 전반적으로 똑같이 강렬해질 수 있게 했다. 선과 면사이의 이러한 평등(표면의 공통성)은 완전히 통합된 ‘관계’ 실제 로서의 회화의 존재에 매우 중요하다.

# 몬드리안과 게슈탈트관계의 이론
인식의 아래에 깔린 기본원칙에 대한 몬드리안의 탐구는 결국 본격적인 수준의 관계이론(우리가 사는 세계의 이해를 관장함으로써 세계를 좀 더 완전하고 보다 안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법칙)으로 열매를 맺었다. 
이는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난 게슈탈트 심리학의 진화가 추구하는 바와 같은 것이었다. 

1931년 독일의 심리학자 쿠르트 코프카는 질서란 ‘비구상적인 카테고리’라고 선언했으며, 게슈탈트(독일어로 ‘형태’라는 뜻)의 목적은 자연의 어떤 부분이 가능하는 전체 의 부분에 속하는가’를 찾아냄으로써 전체안에서 이러한 부분들의 위치와 그들의 상대적 독립성의 정도, 그리고 더 큰 전체의 하위단위로의 분절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는 몬드리안이 회화에서 보여준 관계에의 접근을 거의 완벽하게 단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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