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1904-1989)

[산속의  호수:전화기가 있는 해변] 1938, 캔버스에 유채,  73×9 2.5cm,  런던, 테이트  컬렉션
[산속의 호수:전화기가 있는 해변] 1938, 캔버스에 유채, 73×9 2.5cm, 런던, 테이트 컬렉션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는 1904년 카탈루냐의 피게레스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적극적인 지지에 열 살때부터 드로잉수업을 받았고, 열두 살때 화가 라몽 피쇼를 만나 근현대 미술에 눈을 떴다.

1922년 마드리드로 가서 산페르난도 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루이스 부뉴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마드리드에서 달리는 처음에는 큐비즘(입체파)을, 그 다음에는 다다이즘을 실험했다. 1926년 이제 학교에 자신을 가르칠만 한 선생이 없다고 선언한 뒤 퇴학당했다. 이듬해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 파블로피카소를 만났다.
1929년   달리와  부뉴엘은   가장   중요한   초현실주의 영화<안달루시아의  개〉를 제작했다.  그 후 얼마되지 않아 달리는 미래의 아내 갈라를 만나고 몽파르나스의 초현실주의 그룹에 합류한다. 

달리와 갈라는 1934년 결혼했다.
1939년 프랑코의 집권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퇴출당했다. 1989년 피게레스에서 사망했다.

<산속의 호수 전화기가 있는 해변>은 달리 회화의 좋은 예이다.
무르익은 달리 스타일의 주요 특징(매끄럽게 표현한 단순한 풍경과 사소한 디테일들, 드라마틱한 스케일 변화, 오후의 열기는 물론 저녁 나절의 서늘한 기억까지 품고있는 석양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빛, 눈에 쉽게 들어오면서도 당황스럽고 알쏭달쏭한 형태의 모호함과 기묘한 우연,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데도 순간 다른 무언가로 바뀌어 버리는 정체 등)이 모두 나타나있다.

이 모든것들은 평범한 초현실주의 장치와 트리들이지만, 달리의 손에서는 그저 속임수나 화가의 손재주를 넘어선 무게와 중요성을 지닌다.
 

[보름달이 든 정물]  1927,캔버스에유채,  190×140cm, 마드리드,국립소피아 왕비 예술센터 미술관
[보름달이 든 정물] 1927,캔버스에유채, 190×140cm, 마드리드,국립소피아 왕비 예술센터 미술관

 

이 작품에서는 무언가 근본적으로 불편한 점이 있다. 사물의 흔치 않은 조합에서 축적된 그 기묘함 너머, 아무것도 겉보기와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거북한 존재는 제목에도 등장하는 물고기 모양의 ‘호수’이다.

전경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확대된  이 호수는  누가 보아도   남성의   음경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 정체는 단정하기가 불가능하다. 물고기로   해석하면   그것은 달리의 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이다.

물고기의  꼬리는  뒤쪽의  풍경에  속하고,  그 몸체는 볼록하지도 오목하지도  않고, 둥글지도  평평하지도 않으며,  역설적으로  저 너머  바위투성이  곳에  투영된 물고기  모양의  디테일을  취하고  있다.
 

[죽은 형의 초상] 1963 ,캔버스에유채,  69×6 9cm, 세인트피터즈버그(플로리다주),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
[죽은 형의 초상] 1963 ,캔버스에유채, 69×6 9cm, 세인트피터즈버그(플로리다주),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

 

달리에게 있어 호수는 그가 만나지도 못했던 죽은 형(그의 이름 역시 살바도르였다)을 떠오르게 했다. 그는 형의 유령이 평생 자신을 따라 다닌다고 믿었다. 달리에 의하면 전화기와 끊어진 전화선은 네빌 체임벌린과 아돌프 히틀러 사이의 타협 실패를 의미 한다. 1938년, 독일은 수데텐란트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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