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에른스트 (1891-1976)

막스 에른스트(Max Ernst)는 1891년 쾰른 근교 브륄에서 태어났다. 1909년 본 대학교 철학부에 입학 했으나 곧 미술 공부를 위해 학교를 떠났다. 1914년 파리로 가서 기욤 아폴리네르와 로베르 들로네를 만났으며 같은 해에 파울 클레를 방문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군 복무를 한 뒤 쾰른에서 장 아르프, 알프레드 그륀발트 등과 함께 쾰른 다다이즘을 창설했다. 

1922년 다시 파리로 가서 훗날 초현실주의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몽파르나스 지역 예술가들 사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 ‘적국인’으로 분류되자 페기 구겐하임과 미국으로 망명했다. 두 사람은 1942년 뉴욕에서 결혼했다. 에른스트에게는 세 번째였던 이 결혼은 2년도 채 가지 못하고 파경을 맞았고, 1946년 화가 도로시아 태닝과 재혼했다(만 레이-줄리엣 브라우너와의 합동결혼식이었다). 

에른스트와 도로시아는 1963년 남프랑스로 이주할 때까지 애리조나에서 함께 살았다. 막스 에른스트는 1976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신부의 단장], 1940, 캔버스에 유채, 129.6X96.3cm, 베네치아,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신부의 단장], 1940, 캔버스에 유채, 129.6X96.3cm, 베네치아,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신부의 단장>은 매우 디테일하고 환상적인 에른스트 초현실주의의 산물인 동시에, 그가 전통적인 회화 기법 전반(바탕 채색, 색채 조합, 색채에 광택 입히기 등에) 얼마나 능숙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 루카스 크라나흐, [파리스의 심판], 1530년경, 패널에 유채, 43X32cm, 쾰른, 발라프-리하르츠 미술관
대 루카스 크라나흐, [파리스의 심판], 1530년경, 패널에 유채, 43X32cm, 쾰른, 발라프-리하르츠 미술관

또한 초기 독일 회화(에른스트는 쾰른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대 루카스 크라나흐의 명작 <파리스의 심판>(1530년경)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와 귀스타브 모로 양식의 프랑스 상징주의 회화, 조르조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 회화 등 완전히 서로 다른 화풍에서 받은 영감을 조합해 매우 섬세하게 회화적으로 구성해냈다. 
 

귀스타브 모로, [유니콘] , 1885년경, 캔버스에 유채, 115X90cm, 파리,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귀스타브 모로, [유니콘] , 1885년경, 캔버스에 유채, 115X90cm, 파리,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신부의 단장>은 사실적인 표현과 환상적이고 환영 같은 주제의 대단히 이국적인 작품이다. 상징적으로 이 작품은 여성의 월경과 남성의 음경을 동시에 가리키고 있다. 또한 에로스를 악마에게 반영함으로써 긍정적인 섹슈얼리티와 부정적인 섹슈얼리티를 융합시키고 있다. 

오른쪽 아래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유방이 네 개 달린 매춘부는 도착적인 성 욕망을 수반하는 쾌락의 생산력을 암시한다. 에른스트는 자신을 (‘롭롭’이라는 이름의) 새 형상을 한 생물에 비유하곤 했는데, <신부의 단장>에서도 구부러진 목과 날카로운 부리를 지닌 흑록색 새로 변장하고 신부의 뒤에서 접근해 화살을 음부에 겨눈 채 그녀의 알몸을 위협하고 있다. 

다른 초현실주의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롭롭’(에른스트의 또 다른 자아)이 뒤편 벽에 걸려 있는(뒷모습 이 아닌 앞모습을 비추는) 거울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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