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개인의 정실(情實)은 엄격히 구별돼야 한다. 그것은 기업을 키우는 지름길이요. 또한 기업을 보존하는 길이기도 하다. 

-유일한의 어록 중에서-
 

 

유일한 회장의 교육이념과 유한학교 설립 목표는 '나라에 쓸모 있는 일꾼을 만들자'였다.

유일한 회장이 미국에서 교육받았을 때 미국에서는 실용주의 풍조가 강하게 일고 있었다. '모든 것은 실제적 가치를 동반해야 하며, 실증적 의미가 없는 추상적 공론은 시급한 바가 아니다'라고 생각됐다. 뿐만 아니라 유일한 회장의 측근들도 모두 실천적 인물들이었다. 사업이나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의료기관이나 사회적인 일에 뜻이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유일한 회장은 한국과 같이 인문 분야나 실리성이 적은 학문 분야에 치우치는 경향을 바로잡고 언제 어디서나 쓸모 있는 일꾼, 즉 '기술자'를 양육하고 싶어 했다. 어려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를 키워준 자매들은 독일계 사람들이었는데, 거기서 배운 정신도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은 한가지 기술을 배워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유일한 회장이 기술 교육을 강조한 것은 '한국도 장차 산업사회로 발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계통의 기술자를 키워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예견은 적중했다. 현재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가 바로 기술과 관련된 것이다.

어느 날 유일한 회장이 유한공업고등학교를 돌아보고 있을 때였다. 그는 자라는 젊은이들을 보고 싶어지면 교정을 거니는 습관이 있었다.

그날은 인부들이 교실 유리창의 창살을 수리하는 것을 보고서는 "저들이 누구냐"고 물었다. 손종률 교장은 별생각 없이 "창살이 고장 나서 인부를 시켜 수선하는 중이다"라고 대답했다.

그 때 유일한 회장은 못마땅한 듯 "저런 일은 학생들 스스로 고치고 실습하는 것이 더 좋은 교육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물론 유일한 회장이 한국 교육의 실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훌륭한 기술자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렇다고 해서 유일한 회장이 기술에만 치우쳐서 학생들의 인성교육이나 교양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먼저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 그 후에 기술을 배우며, 사회에 봉사하는 일꾼을 만들자'는 것이 그의 교육정신이었다.

유일한 회장의 '교육정신'은 지금도 유한공업고등학교의 교훈으로 이어지고 있다.

첫째, 참된 인간.

둘째, 기술 연마.

셋째, 사회봉사.

유일한 회장은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그가 학생들에게 보여준 정신은 '성실·진실·참됨'이었다. 진실하게 살며 거짓과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의지와 참된 성품을 키워주고 싶었다. 사회봉사는 유일한 회장이 실천으로 보여준 살아 있는 교육정신이었다.

'열심히 배우고 일하는 것 그 자체가 사회에 대한 봉사이며, 봉사하기 위해서는 기술자가 되자'고 호소하는 것이 유일한의 정신이었다. 유일한 회장은 언제나 자신의 일을 나타내거나 크게 선전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독립선언문 같은 큰일을 했음에도 자기 입으로 그 일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후일 <유한 50년사>를 편집하다가 미국 국회도서관에서 그 사실이 우연히 밝혀졌을 정도다.

유한양행을 후배들에게 맡긴 유일한 회장은 말년에는 온통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학원에 더 큰 애착을 느꼈다. 딸 유재라도 '기업은 존폐가 있을 수 있어도, 교육은 영구한 것'이라는 말을 아버지가 자주 했다고 회고했다.

유일한 회장의 교육에 대한 열성은 유한학교 설립과 속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가난한 학생들을 돌보아 주셨다. 딸도 모르게 딸 친구의 학비를 내준 적도 있었다.

김명선 박사는 오랫동안 세브란스의 책임자로 있었다. 그는 남과 학생들을 위했고, 특히 가난한 제자들을 극진히 생겼다. 학비가 모자란다든지, 여비 때문에 미국 유학의 길을 포기하려는 제자가 있으면 반도 호텔에 머물고 있는 유일한 회장을 찾아가곤 했다.

김명선 박사가 찾아오면 유일한 회장은 “이 사람!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온 거야?”라면서 웃으며 환대해 주었다. 김명선 박사는 학생들 일로 부탁이 너무 잦아 멋쩍기는 했으나 “형님. 내가 찾아오는 일이야 뻔하지 않소. 미국에 꼭 보내야 할 놈이 있는데 어떻게 합니까” 며 후원을 부탁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유일한 회장은 얼굴도 못 본 많은 젊은이들을 도와주었다. 물론 유일한 회장이 도와줬다는 건 아무도 몰랐다.

유일한 회장이 남긴 유산도 대부분 교육적인 사업과 관련이 있는 기관에 기증됐다. 유일한 회장은 돈보다 더 큰 교육의 결과를 남기고 갔다. 인간의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지만, 그의 깊은 정성과 연원은 우리나라 기술 교육의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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