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유일한 박사가 그립다

유일한 박사 동상
유일한 박사 동상

 

유일한 박사 일생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조국에 대한 사랑과 봉사’였다. 그것을 제외하면 그의 생애는 지독한 일중독자라는 빈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그가 아홉 살에 부친의 권고로 조국을 떠났을 때부터 서울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그는 하루도 민족과 국가를 잊은 일이 없었다. 또 그 애국적인 정성과 의지를 몸소 많은 사람에게 행위로 보여 주었다. 유한양행이 설립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기업으로 존속할 수 있었 던 것도 오로지 유일한의 애국심의 소치였다.

유일한 박사는 필라델피아에서 독립 선언을 할 때,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것을 신성한 말로 맹세해야 한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24세때 한 맹세를 평생에 걸쳐 단 한 번의 어김도 없이 굳게 지켰다.

물론 우리 선배 중에는 많은 애국자가 있다. 그러나 유일한 박사같이 자신을 위한 사심이나 소유욕 없이 모든 것을 오로지 국가를 위해 바친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되풀이해서 “국가, 교육, 기업, 가정. 이 모든 것은 그 순위를 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명제들이다. 그러나 나로 말하면 바로 국가 교육·기업·가정 순위가 된다”라고 말한 것은 공론도 아니며 요청도 아니었다.

자신의 생애를 바로 그런 순위로 살았다. 가까운 가족들의 오해도 없지 않았다. 영면할 때도 딸인 유재라만 한국에 남아 있을 정도로 가정의 행복보다 기업과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가 말년에 건강을 잃고 고생할 때였다.

어느 날 대방동 집 앞 큰길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우리 대통령이 서독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출국하는 환송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었다. 유일한 회장도 지팡이를 짚은 채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길가까지 나왔다. 대통령의 행진이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본 유일한 회장은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유한양행의 한 간부는 가슴 저미는 아픔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왜 눈물을 흘렸겠는가. 아홉 살에 고국을 떠난 뒤 나라를 빼앗긴 아픈 상처를 달랠 길이 없었는데, 이제는 우리의 국가 원수가 독립국의 책임자로 우방 국가를 방문하는 감격을 누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국충정으로 맺혔던 서글픔이 북받쳐 올랐을 것이다.

"사람은 죽으면서 돈을 남기고 또 명예를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값진 것은 사회를 위해서 남기는 그 무엇이다"라고 말한 유일한은 자기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국가에 바쳤다. 그 무엇을 남긴 것이 아 니라, 자신의 모든 소유와 그 자신까지도 우리 사회에 모두 남겨주고 간 것이다.

그의 기업이념이 오로지 '민족과 국가를 위한 충정'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어렵게 생각하는 문제들도 그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으며 또 언제나 차원 높은 발상을 할 수 있었다.

제약사업에 일생을 바치면서 '건강한 국민, 병들지 아니한 국민만 이 주권을 누릴 수 있다'라는 이상을 가졌으니 어떻게 저질 약품을 생산·판매할 수 있었겠는가.

"양질, 염가의 제품 생산, 이것은 기업 성취의 ABC이다. 이것은 기업의 사회에 대한 책임이다"라고 유한양행 가족들에게 말한 유일한박사는 좋은 물건을 염가로 제공해서 이윤을 줄이고 봉사의 뜻을 행동에 옮기자는 가치관의 실천인이었다.

그는 사람이 정당한 일을 하고 그 목적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데 있다면 그 사업이 비록 실패에 그쳤다 하더라도 크게 염려할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패가 더 큰 사회봉사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 그것으로 해서 스스로 나의 존재가치를 깨닫는다면, 실패 그것은 이미 나의 재산일 것이다”라는 말의 뜻은 무엇이겠는가.

실패 때문에 나의 존재가치를 깨닫는다면, 성공으로 인해 나의 존재가치를 잊는 것보다 귀하다는 뜻 아니겠는가. 존재가치는 일 자체에 있기보다는 일의 사회적 의미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일한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남기기도 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과 돈을 써야 하는 사람이 만나서 합의되었을 때 사회적 부가 창출될 수 있다."

이 말은 언뜻 보면 공급과 수요에 관한 일반적인 얘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유일한 박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물건을 공급하는 기업의 태도였다. 기업이 수익과 이윤만을 목적으로 물건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윤보다 물건을 사는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선의와 국가경제에 기여하겠다는 애국심이 더 중요하다고 유일한은 늘 강조했다. 그런 마음이 있어야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고, 그래야 기업이 번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일한 박사가 기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정신이자 철학이었다.

쓸 사람만 있고 벌 사람이 없으면 안 되고, 버는 사람만 있고 쓸 사람과 쓸 만한 물건이 없으면 기업은 망해버리고 경제는 마비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사상과 정신은 유일한 박사의 일생을 통해 계승되었으며, 국가와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뒷받침하는 큰 정신적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자본주의 기업은 선의의 경쟁력을 동반한다. 그때 국가와 사회라는 전체를 생각지 못하고 우리 회사의 육성과 발전에만 집착하면, 선의의 경쟁이 기업의 파탄을 초래할 수도 있고 나아가 국가에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 특히 국제적인 무대에서 출혈적인 경쟁을 한다면, 그 것은 기업과 국가 모두가 불행해지는 원인이 된다.

유일한 박사는 외국 기업과는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국내 기업에 대해서는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협력하려는 입장을 보였다. 다른 회사의 약점이나 단점을 이용하려 하지 않았으며, 경쟁 회사를 헐뜯는 것 같은 태도는 취하지 않았다. 언제나 다른 기업이 손대지 않은 분야에 창의적 인 노력을 기울였고 공존과 공영의 정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오늘까지 국내 기업인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 하나가 그것이다. 그런 마음의 밑바탕에는 그의 뜨거운 애국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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