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뒤에 숨은 실체를 꿰뚫는다

에릭슨은 누이들이 말할 때 나타나는 호흡패턴에도 매료됐는데 그 중 어느 리듬은 지루하다는 뜻이어서 곧 하품으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누이들에게는 머리 카락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했다. 일부러 천천히 머리를 뒤로 넘기는 것은 더 이상 참기 힘들다는 신호였다. ‘충분히 들었어. 이제 그만 좀 말해’ 하지만 더 빠르게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넘기면 아주 집중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침대에서 꼼짝 못하는 에릭슨은 청력이 훨씬 더 예리해졌다. 이제는 옆방에서 나누는 대화까지 들렸다. 옆방의 사람들은 에릭슨 앞에 있을 때처럼 즐거운 척 할 필요가 없었다. 에릭슨은 이내 독특한 패턴을 하나 눈치챘다. 

대화를 나눌 때 사람들이 직설적으로 말하는 법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예컨대 옷을 빌리고 싶다거나 누군가에게 사과를 받고 싶은 것처럼 원하는 게 있는 누이는 몇 분간이나 빙빙 에둘러가며 여러 가지 힌트를 남겼다. 누이의 숨겨진 바람은 그 녀의 목소리 톤에서 뚜렷이 드러났는데 특정 단어가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누이는 상대가 이것을 눈치채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종종 상대가 힌트를 알아채지 못할 때도 있어서 그럴 때는 하는 수없이 대놓고 원하는 것을 말해야 했다. 계속 들어보아도 이 패턴은 모든 대화에서 나타났다. 이제 누이가 흘리는 힌트의 내용을 최대한 빨리 알아맞히는 건 에릭슨에게 하나의 게임처럼 됐다.

에릭슨은 몸이 마비된 후 갑자기 인간이 소통하는 두 번째 채널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이 두 번째 언어를 통해 사람들은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오는 무언가를 표현했다. 그리고 때로는 스스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만약 내가 이 언어의 복잡한 원리를 완전히 깨우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에 대한 내 인식은 어떻게 달라질까? 혹시 입술이나 호흡, 손의 긴장감처럼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제스처까지도 읽어낼 수 있을까?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에릭슨은 가족들이 그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 준 안락의자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형제자매들이 뛰노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당시 그는 입술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이제 말을 할 수 있었으나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에릭슨은 자신도 밖에 나가 함께 뛰놀고 싶은 마음이 사무치도록 간절했다. 잠시 스스로 마비상태라는 것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에릭슨은 마음속으로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때 비록 아주 잠깐이긴했지만 다리 근육이 움찔하는 것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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