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 (22)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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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3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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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현대미술을 예고하다

본 지는 앞으로 수 회에 걸쳐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인상주의편을 연재하려고 한다. 인상주의는 미학사에 있어 그 의의는 상당하다. 현대미술의 시초가 되는 인상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곧 현대미술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진중권의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을 찾아가길 바란다. (편집자주)


지난 호에 이어 ▶


1888년 파리 생활에 염증을 느낀 고흐는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옮긴다. 그곳에서 그는 자기만의 예술 언어를 완성하게 된다. 그 유명한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테라스]도 이곳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대상을 둘러싼 윤곽선은 퐁타벤 화파의 영향을 보여주나, 그들과 달리 고흐는 이 그림을 야외에서 그렸다. 아를에서 고흐는 한동안 고갱과 함께 지낸다.

하지만 고흐의 괴팍한 성격 때문에 둘의 우정은 파탄을 맞는다. 고갱에 따르면, 어느 날 고흐가 발작을 일으켜 면도칼로 자신을 협박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둘의 관계에서 고갱이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려 한 것이 그의 신경에 거슬렸는지도 모른다. 고갱이 떠난 후 좌절에 빠진 고흐는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른다. (그림 1, 2)

(그림 1)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테라스. 빈센트 반 고흐. 1888년
(그림 1)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테라스. 빈센트 반 고흐. 1888년

 

(그림 2)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 1889년
(그림 2)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 1889년

이 일이 있은 후 고흐는 아를의 병원으로 옮겨진다. 퇴원 후에도 반복적으로 환각에 시달리다가 결국 병원에 다시 입원을 하게 된다. 이 시기에 폴 시냐크가 한 달에 두 번 정도 그를 찾아왔다고 한다. 1889년 고흐는 아를을 떠나 생레미의 요양원에 자진해서 입원을 한다. 이 시기에 그는 주로 요양원의 정원과 인테리어를 주로 그렸지만, 가끔 산책을 허락받아 그곳 주변의 풍경을 그리기도 했다.

대표작인 [별이 빛나는 밤]은 거기서 탄생했다. 짧고 두꺼운 스트로크를 병치하는 화법은 분할주의의 영향을 보여주나, 밤하늘의 소용돌이는 신인상주의를 넘어 표현주의에 접근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느끼는 대로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 3)

(그림 3) 별이 빛나는 밤에. 빈센트 반 고흐. 1889년

1890년 고흐는 생레미의 요양원을 나와 파리 근교의 오베르로 간다. 그는 거기서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매료된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그 들판이 자기의 ‘슬픔과 극도의 고독’을 대신 말해준다고 쓴다.

그해 7월 27일 고흐는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여 총을 맞은 상태에서 제 발로 걸어 병원을 찾아간다. 총알이 용케 내장을 피해가는 바람에 상태가 호전되는 듯했지만 제거하지 못한 총탄의 감염으로 인해 총을 쏜 지 약 30시간 후에 숨을 거둔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 테오도 형을 잃은 충격 때문인지 세상을 뜬다. 테오는 처음에는 다른 곳에 묻혔으나 후에 이장되어 지금은 오베르의 조그만 공동묘지에 형과 나란히 묻혀 있다. (그림 4)

(그림 4) 오베르-쉬르-우아즈의 교회. 빈센트 반 고흐. 1890년
(그림 4) 오베르-쉬르-우아즈의 교회. 빈센트 반 고흐. 1890년

짧고 굵은 스트로크로 화면을 채우는 고흐의 기법은 신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신인상주의는 시각적 인상의 정확한 재현을 추구했지만, 이를 위해 색을 분할함으로써 화면에는 원색들만 남게 된다. 그 결과 후기로 갈수록 색 자체가 자기주장을 하면서 화면이 강한 표현성을 띠게 된다. 고흐에게도 색채는 그저 재현의 수단에 불과한 게 아니다. 그는 “색은 그 자체로 뭔가를 표현한다.” 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고흐는 노랑을 좋아했다. 노랑이 감정적 진실의 상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그림에서 노랑은 태양과 삶과 신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초기의 모노크롬에서 벗어나 색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는 ‘온전한 색채의 형이상학’에 빠져든다.

색의 상징주의. 이 중세의 전통이 동시에 현대미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고흐의 작품은 그 밖에도 다양한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이를테면 오베르의 밀밭은 고흐가 느끼는 ‘슬픔과 극도의 고독’을 말해주고, 아를의 밤 카페는 그저 풍경이 아니라 ‘격렬한 인간성의 격정을 포현’한 것이다.

또 생레미 시절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실측백나무는 죽음의 상징으로 통한다. 고흐는 회화를 가시적 세계의 ‘재현’에서 비가시적인 감정이나 관념의 ‘표현’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렇게 가시적 세계의 재현을 거부하고 자연의 비가시적 본질로 침투함으로써 고흐는 훗날 독일 표현주의의 출범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폴 고갱은 증권시장에서 일하다가 시장의 붕괴로 일자리를 잃자 부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의 길을 걷기로 한다. 다른 화가들처럼 그 역시 일단 당시 주류인 인상주의에서 출발했다. 거기에는 친구인 피사로의 영향도 한몫했다.

[보지라르의 시판용 채소밭]에서 보듯이, 그의 초기작은 전형적인 인상주의를 보여준다. 제재 역시 아직 인상주의자들이 즐겨 그리던 풍경에 머물러 있었다. 이 시기에 그려진 유일한 여성 누드에서는 그가 숭배한 드가의 영향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새로 부상하던 신인상주의를 경멸했고, 얼마 후에는 아예 인상주의와도 결별하게 된다. 그 후 피사로와 그의 관계는 거의 적대적인 수준으로까지 치닫는다. (그림 5)

(그림 5) 보지라르의 시판용 채소밭. 폴 고갱. 1879년
(그림 5) 보지라르의 시판용 채소밭. 폴 고갱. 1879년

다음 호에 계속 ▶

 

목차
0. 고전미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고전미술의 붕괴
2. 유럽의 시대정신
3. 혁신을 위해 과거로
4.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5. 인상주의의 탄생
6. 순수 인상주의자들
7. 인상주의를 벗어나다
8. 색채와 공간의 분할
9. 현대미술을 예고하다
10. 지각에서 정신으로
11.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의 가교
12. 감각을 실현하라
13. 자연미에서 인공미로
14. 모더니즘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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