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 (25)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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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2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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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지각에서 정신으로

본 지는 앞으로 수 회에 걸쳐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인상주의편을 연재하려고 한다. 인상주의는 미학사에 있어 그 의의는 상당하다. 현대미술의 시초가 되는 인상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곧 현대미술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진중권의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을 찾아가길 바란다. (편집자주)

 

 

지난 호에 이어 ▶

 

상징주의(symbolisme)는 19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문학운동 및 미술운동의 이름이다. ‘상징주의’라는 말은 시인이자 비평론자인 장 모레아스가 [피가로]라는 신문에 기고한 ‘상징주의 선언’(1886)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선언’에서 모레아스는 상징주의 시를 ‘관념에 감각적 형태’를 입히는 작업으로 규정한다. 상징주의 시에서 감각적 형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념을 표현하는 기호일 뿐이라는 것이다. 원래 ‘상징(symbole)’이라는 말은 ‘함께 던지다(jetter ensemble)’ 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상징주의 시란 결국 감각적 이미지에 초감각적 관념을 실어 함께 던지는 시를 가리킬 게다. 이는 물론 회화에도 그래도 적용된다. 이처럼 이 예술에서 자연의 그림, 인간의 행동, 모든 구체적 현상은 그 자체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거기서 어떤 근원적 이념들과의 내밀한 친화성을 드러내는 데에 쓰이는 감각적 외관들일 뿐이다. (그림 1)

(그림 1) 환영: 살로메의 춤. 귀스타브 모로. 1876년
(그림 1) 환영: 살로메의 춤. 귀스타브 모로. 1876년

‘상징’이란 그 감각적 외관 안에 들어 있지 않은 어떤 초월적인 실재의 기호다. 즉, 상징주의 시나 회화는 우리로 하여금 그 기호 없이는 파악할 수 없을 어떤 초월적 실재를 지각하고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 과거에 그 초월적 실재는 주로 종교적 사유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상징주의 예술이 암시하는 초월적 실재가 반드시 종교적 성격을 띨 필요는 없다. 그 점에서 상징주의에서 말하는 상징은 중세 예술의 ‘알레고리’와 구별된다. 중세의 ‘알레고리’는 신앙 공동체 전체가 공유하는 어떤 객관적 해석의 체계를 전제했다.
반면에 상징주의 예술의 바탕에는 그런 보편적 코드가 깔려 있지 않다. 거기서 상징은 작가 개인의 내밀한 주관적 코드에 따라 만들어진다.

상징주의는 19세기의 미술의 주류로 떠오른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탄생했다. 상징주의 운동은 19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지만, 사실 가시적 이미지를 통해 비가시적 관념을 표현하는 경향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길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진보’의 시대에도 시류에 상관없이 저만의 세계에 침잠한 작가들이 세계 곳곳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는 ‘상징주의’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상징주의를 실천하고 있었다. 나아가 독일어권의 나자렛파나 영국의 라파엘전파 역시 비록 기법의 측면에서는 자연주의에 속할지 모르나 적어도 정신의 측면에서는 상징주의의 전사(前史)로 분류해도 무방하다.

19세기 후반의 유럽을 지배하던 시대정신은 과학주의와 산업혁명이었다. 이는 예술의 영역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주의자들은 예술에서 ‘미’가 아니라 ‘진실’을 추구했다. 이미 앞에서 본 것처럼 신인상주의자 쇠라는 회화를 엄밀한 과학의 정신 아래 놓으려 했다. 그는 다른 이들이 예술에서 시를 볼 때 자신은 거기서 과학을 본다고 말하곤 했다.

사실주의․인상주의․신인상주의가 지배하던 ‘진보’의 시대에 현실의 문제를 떠나 과거의 제재로 눈을 돌리거나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는 것은 예술적 ‘반동’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바로 그 시기에 유럽에서 가톨릭의 영향이 강하게 남은 지역에서는 상징주의 운동이 일어난다. 왜 그랬을까?

당시 유럽에서는 산업혁명의 여파로 농민들이 도시로 이동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통계에 따르면, 당시 농촌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만 고향에 남고, 한 명은 신대륙이나 식민지로 이주하고, 나머지 세 명은 도시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렇게 농촌을 떠나 대거 도시로 유입된 이들은 곧바로 가치관의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된다. 낯선 도시환경 속에서 과거 자신에게 정체성을 부여해주고 삶에 방향을 준 익숙한 공동체적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으로부터 분리된 채로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 충격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많은 이가 현재에서 과거로, 현실에서 상상으로 정신적 피정(避靜)을 떠나게 된다. 상징주의는 결국 상실된 것을 상상적으로 회복하려는 정신적 태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상징주의는 양식이라기보다는 철학의 이름이기에 상징주의 양식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상징주의 작가들이 사용하는 기법은 고전주의에서 자연주의와 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를테면 모로․고갱․비어즐리․뵈클린․뭉크의 기법 사이에 양식적 공통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현실 너머의 초월을 지향하는 태도다.

상징주의자들은 신화와 성서의 전통적 알레고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한편, 꿈․황홀감․질병․죽음․죄악․환각․전망․환상 등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주제들을 회화에 끌어들였다. 그 주제들의 바탕에는 대개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충동이 깔려 있는데, 이는 훗날 등장할 초현실주의의 전조라 할 수 있다. (그림 2, 3)

(그림 2)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귀스타브 모로. 1864년
(그림 2)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귀스타브 모로. 1864년

 

(그림 3) 오르페우스. 귀스타브 모로. 1865년
(그림 3) 오르페우스. 귀스타브 모로. 1865년

 

 

 

 

다음 호에 계속 ▶

 

 

목차

0. 고전미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고전미술의 붕괴
2. 유럽의 시대정신
3. 혁신을 위해 과거로
4.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5. 인상주의의 탄생
6. 순수 인상주의자들
7. 인상주의를 벗어나다
8. 색채와 공간의 분할
9. 현대미술을 예고하다
10. 지각에서 정신으로
11.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의 가교
12. 감각을 실현하라
13. 자연미에서 인공미로
14. 모더니즘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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