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리히터(1932~)

계단을 내려오는 여성 1965. 캔버스에 유채 200.7×129.5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계단을 내려오는 여성 1965. 캔버스에 유채 200.7×129.5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게르하르트 리히터 Gerhard Richter는 1932년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의무교육을 마친 뒤 광고게임과 무대 배경 제작 등을 하다가 드레스덴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불과 몇 달 전 아내와 함께 서독의 뒤셀도르프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리히터는 뒤셀도르프 국립 미술 아카데미에 등록하여 1961년부터 1964년까지 칼 오토 고츠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1964년 뒤셀도르프의 쉬멜라 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리히터는 함부르크의 회화 미술 학교, 노바스코샤 컬리지 오브 아트앤 디자인, 그리고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오늘날 활동하는 가장 중요한 예술가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리히터의 명성은 2002년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로버트 스토르가 큐레이터를 맡아 열린 세 번째 회고전으로 더욱 확고해졌다.
리히터는 쾰른에서 살며 작업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사진을 기반으로 한 조형 회화와 과정을 기본으로 하는 추상회화이다.
유형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부류의 회화는 화가의 ‘중립성’의 중요함을 강조한다는 공통된 과정상의 원칙을 내세운다.

리히터의 회화는 조형 회화는 추상 회화든 관계없이 표현이 아닌 방법에 관심이 있다.사진 회화는 ‘사진처럼 보이는 것’이 목적이다. 마치 사진처럼 화면 위에서 초점을 이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그 피사체에 대한 충실함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사진 효과를 붓으로 옮기는 데 성공한 화가의 손재주와 솜씨 말이다. <계단을 
내려오는 여성>은 이러한 과정의 개념에 관한 가장 정교한 예시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마르셀 뒤샹의 걸작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에 대한 재치있고 심지어 장난스럽기까지 한 논평이다. 또한 이 두 작품사이의 차이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뒤샹이 원근법이 적용되지 않은 공간 안에서 나체의 남성을 다루었다면 리히터는 완전하게 후퇴하는 사진과 같은 공간 안에 정장 차림의 여성을 등장시켰다.
 

헬가 마투라, 1966 캔버스에 유채 135×130cm 토론토 온타리오 아트 갤러리
헬가 마투라, 1966 캔버스에 유채 135×130cm 토론토 온타리오 아트 갤러리

뒤샹의 누드가 화면과 평행하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한다면 리히터의 여인은 화면을 사선 방향으로 가로질러 관객을 향해 이동함으로써 화면의 결벽성을 위협한다. 이러한 면에서 리히터는 이중적으로 아이러니컬하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뒤샹의 마지막 이젤 회화였다. 그가 회화에서 ‘망막’이라 불렀던 것과의 최후의 희롱이었다.

공간적인 환영을 만들기 위한 표면과 붓질 사이의 유희였다. 회화를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리히터는 (회화 이미지를 위한) 사진 이미지를 사진의 표면 중립성의 모방으로 바꾸어버렸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지그마르 폴케, 그리고 독일 팝 아트: 각주

1960년대 중반에서 후반까지 폴케와 리히터의 작품은 종종 독일 팝 아트의 대표작이라 불린다. 
확실히 폴케와 리히터 모두 대중적인 심상에 흥미가 있었다. 이는 특히 언론 사진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폴케와 리히터는 동 세대의 영국이나 미국 화가들과 같은 공개적인 ‘유명인사’의 관점에서 보면 절대로 팝 아티스트는 아니었다.

독일 분단이라는, 냉전의 직접적인 경험 때문에 두 사람은 보다 문화적으로 의식적이고 비판적이었다. 그들은 이미지 자체보다는 이미지와 그림을 그리는 물리적인 과정 사이의 개념적인 인터페이스에 관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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