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 (1840-1926)

[루앙 대성당, 잿빛과 장밋빛의 교향곡 ] 1892-94, 캔버스에 유채, 100×65cm, 카디프 웨일스 국립 박물관
[루앙 대성당, 잿빛과 장밋빛의 교향곡 ] 1892-94, 캔버스에 유채, 100×65cm, 카디프 웨일스 국립 박물관

루앙 대성당, 잿빛과 장밋빛의 교향곡
건축물에 작용하는 빛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작가들이 즐겨 다루는 테마였다. 그들은 ‘빛은 시간의 흐름과 모종의 관계가 있으며 빛에는 사물의 색깔은 물론, 그들의 형태와 물질까지 바꾸어 버리는 힘이 있다.’라고 믿었다.

이러한 이론의 가장 유명한 문학적 예시물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명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1권이다. 여기에서 그는 콩브레 성당을 묘사하는 문장들을 길게 늘어놓는다.

‘낡은 포치는 닳아서 형상을 알아볼 수 없다. … 그 기념비들은 … 더는 단단하고 생명이 없는 물체가 아니다. 시간이 그들을 부드럽게 만들었으며 경계를 넘어 벌꿀처럼 흐르고 황금빛 물결이 되어 흐르며 꽃같은 고딕수도를 쓸어내린다.’

1892년 클로드 모네는 루앙 대성당의 서쪽 파사드를 그리기 시작한 이래, 3년에 걸친 기간 동안 약 30점의 작품들을 완성했다. 이 중에 26점은 루앙 대성당을 같은 날, 같은 위치에서 다른 시간대에 그린 연작이다.

<루앙 대성당, 잿빛과 장밋빛의 교향곡>은 이 가운데 하나이다. 모네는 루앙 대성당과 마주 보고 있는 가게의 1층 창문에 이젤을 놓고 밖을 내다 보며 수 시간마다 캔버스를 바꾸면서 온종일 햇빛과 그림자가 변화하는 패턴을 체계적으로 포착했다.

이를 위해 1893년 루앙에 장기 체류하기도 했으며, 지베르니에 있는 스튜디오로 돌아와서도 기억에 의존하여 1894년까지 작업을 계속했다. 그 결과 주제의 질감을 닮아 표면이 심하게 울퉁불퉁한 연작물이 나왔다.

이러한 표면은 연작 전체에 일관되게 나타나므로 모네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모네는 빛을 하나의 물질 로써 형체를 부여한 듯하다. 비록 그 구성은 블루와 오렌지라는 보색의 축을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환한 부분에는 부조화색 인 핑크를, 어두운 부분에는 부조화색인 보라를 사용하여 최대한의 강렬함을 끌어내고 있다.
 

연작
모네는 흔히 ‘연작 회화’의 선구자로 불린다. <루앙 대성당>을 그릴 당시 모네는 이미 <벨- 일의 바위들>(1886), <에프트 강둑 위의 포플러 나무> (1890-91), <밀 짚단>(1888-1891 사이) 등 여러 연작물을 완성한 후였다.
<루앙 대성당> 연작 이후 모네는 <센강의 지류, 지베르니 근교>(1897) 와 런던에서 <채링 크로스 브리지>(1899-1904), 그리고 <국회의사 당 >(1900-04)을 잇따라 그린다.

모네를 따른 다른 화가들(피트 몬드리안, 알렉세이 야블렌스키, 요제프 알베르스, 모리스 루이스, 프랭크 스텔라) 은 형태의 변형과 서로 다른 색채를 실험하기 위해서였지만 모네는 변화 하는 빛의 조건을 탐구하기 위해 연작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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