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인상주의의 탄생

본 지는 앞으로 수 회에 걸쳐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인상주의편을 연재하려고 한다. 인상주의는 미학사에 있어 그 의의는 상당하다. 현대미술의 시초가 되는 인상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곧 현대미술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진중권의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을 찾아가길 바란다. (편집자주)

 

지난 호에 이어 ▶

 

대상의 세부적 묘사를 포기하기에 인상주의자들의 화면은 시각적 인상들의 향연으로 변한다. 여기서는 색채의 효과가 형태의 묘사를 압도해버린다. 이렇게 형(形)이 붕괴되어 색(色)에 종속될 때 ‘색에 대한 형의 우위’라는 고전적 원칙이 뒤집어진다. 인상주의 회화에서 묘사된 대상들에는 대개 뚜렷한 윤곽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서 그림을 보면, 윤곽은 사라지고 물감 층만 눈에 들어온다. (그림 1, 2)

▲ (그림 1) 사과와 포도. 클로드 모네. 1880년
▲ (그림 1) 사과와 포도. 클로드 모네. 1880년

 

▲ (그림 2) 사과와 포도(부분). 클로드 모네. 1880년
▲ (그림 2) 사과와 포도(부분). 클로드 모네. 1880년

이는 인상주의자들이 ‘대상’을 재현하는 것보다 ‘지각’을 표현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회화가 ‘자연’을 모방하려 했다면, 인상주의는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을 주제화한다. 이 메타적 관점이 바로 인상주의의 본질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인상주의자들의 ‘지각’에 대한 관심은 화학자인 미셸 외젠 슈브뢸의 색채 이론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슈브뢸은 카펫 공장에서 색채 전문가로서 염색된 색깔들이 바라는 대로 나오지 않는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색채가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생리적 현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색채와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 색채는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녹색이라도 그 옆에 어떤 색이 있느냐에 따라 우리 눈에는 다른 색으로 보일 수 있다. 슈브뢸은 이 효과를 ‘동시적 대비’라 불렀다. 동시적 대비의 이론은 색채가 ‘물리적 현상’이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지각의 현상’이라고 말해준다. 인상주의자들은 이를 아예 회화의 주제로 삼았다.

‘인상주의라는 말 이전의 인상주의자’라 불리는 영국의 윌리엄 터너는 화면의 처리에서 괴테의 색채 이론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괴테의 색채 이론은 그 성격이 철학적이어서 색채의 정서적 효과를 강조한다.

반면에 슈브뢸의 색채론은 그 성격이 과학적이어서 무엇보다 색채의 생리적 효과에 주목하는 특성이 있다. 실제로 모네를 비롯한 대부분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되도록 물감의 혼합을 피해 색들을 옆으로 나란히 병치하는 기법을 즐겨 사용했는데, 이는 슈브뢸이 말한 ‘동시적 대비’의 원리를 이용해 색채를 생생히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이 기법으로 그려진 그림은 대상의 객관적 재현이라기보다는 눈에 비친 주관적 인상의 즉각적 표현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림 3, 4)

▲ (그림 3) 빛과 색채: 노아의 대홍수 이후의 아침, 창세기를 쓰는 모세. 윌리엄 터너. 1843년
▲ (그림 3) 빛과 색채: 노아의 대홍수 이후의 아침, 창세기를 쓰는 모세. 윌리엄 터너. 1843년

 

▲ (그림 4) 미셸 외젠 슈브뢸의 색채 원환
▲ (그림 4) 미셸 외젠 슈브뢸의 색채 원환

[풀밭 위의 점심]은 모네의 출발점이 마네였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저 등장인물에 옷만 입혀놨을 뿐 제재와 제목이 일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외광 효과를 도입하여 원근법적 깊이를 약화시키고 3차원 모델링을 포기함으로써 화면에 2차원 평면의 느낌을 주는 것까지 마네의 화법을 그대로 빼닮았다. 물론 이 그림은 마네를 향한 경의의 포현이자 도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그리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모네는 이 그림을 집주인에게 집세로 내주었다가 1884년이 되어서야 되찾는다. 하지만 집주인이 보관을 잘못하여 곰팡이가 스는 바람에 그림을 삼등분했고, 그 중 한 조각이 사라져 지금은 저 두 조각만 남았다고 한다. (그림 5)

▲ (그림 5) 풀밭 위의 점심. 클로드 모네. 1865년
▲ (그림 5) 풀밭 위의 점심. 클로드 모네. 1865년

[인상, 해돋이]는 모네가 마네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화면에서 보이는 장면은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역에 있는 모네의 고향 르아브르 항구의 풍경이다. 화면 중간에 앞에서 뒤로 세 척의 고깃배가 떠 있고, 그 너머로 자욱한 안개 속에 희미한 실루엣들이 보인다. 왼쪽에 있는 것은 항구에 정박한 증기선들의 돛대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화물을 하역하는 데 쓰이는 크레인들이다.

막 떠오른 태양이 물 위에 오렌지 빛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림은 마치 유화물감을 사용해 대충 그린 스케치처럼 보인다. 깊이가 거의 사라져 평면으로 보일 정도다. 그저 뒤쪽으로 갈수록 작아지는 고깃배들의 크기를 통해 겨우 공간감이 느껴질 뿐이다. (그림 6)

▲ (그림 6) 인상, 해돋이. 클로드 모네. 1872년
▲ (그림 6) 인상, 해돋이. 클로드 모네. 1872년

당시 프랑스 사회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1871)의 패배의 충격에서 막 회복되던 시기였다. 번성하는 르아브르 항구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이 패전 후 “다시 기력을 찾은 프랑스의 힘과 아름다움에 보내는 찬사”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작품에서 번성하는 상공업 중심지의 모습은 안개 속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모네에게 제재나 주제가 중요했다면, 아마 이 작품을 ‘르아브르 항구’라 불렀을 것이다. 사실 이 그림을 르아브르의 풍경으로 인식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제목에 대해 모네는 이렇게 말했다. “카탈로그에 수록하기 위해 그림의 제목을 달라고 해서 저게 정말 르아브르의 풍경이라고 할 수가 없어 그냥 ‘인상이라는 말을 넣으라’고 했다.”

이 작품은 번성하는 산업 항구를 진실하게 재현한 게 아니라, 해 뜨는 순간의 시각적 인상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바닥의 캔버스 천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얇게 채색되어 있다. 해 뜨는 순간의 인상을 즉각적으로 포착하기 위해 마치 스케치를 하듯이 신속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교한 묘사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상들의 형(形)이 거의 붕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화면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대상의 막연한 인상만 남기는 거친 붓질의 흔적들뿐이다. 과거의 화가들이 외부의 ‘대상’을 그리려 했다면, 모네는 대상에서 반사된 빛들이 우리의 망막에 연출하는 순간적 ‘인상’을 포착하려 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

 

목차
0. 고전미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고전미술의 붕괴
2. 유럽의 시대정신
3. 혁신을 위해 과거로
4.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5. 인상주의의 탄생
6. 순수 인상주의자들
7. 인상주의를 벗어나다
8. 색채와 공간의 분할
9. 현대미술을 예고하다
10. 지각에서 정신으로
11.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의 가교
12. 감각을 실현하라
13. 자연미에서 인공미로
14. 모더니즘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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