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미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본 지는 이번호부터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인상주의편을 연재하려고 한다. 인상주의는 미학사에 있어 그 의의는 상당하다. 현대미술의 시초가 되는 인상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곧 현대미술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진중권의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을 찾아가길 바란다. (편집자주)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라도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의 차이는 금방 알아차릴 게다. 고전미술에는 식별할 수 있는 대상이 있고,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에게 그 대상은 감각적 쾌감을 주고, 그 메시지는 정서적 감동을 준다.

반면에 20세기 현대미술에는 종종 알아볼 만한 대상이 없다.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기 위해 눈을 제목으로 돌려봤다 소용이 없다.

거기에는 ‘무제’라고 적혀 있기 일쑤여서 쾌감이나 감동은커녕 외려 짜증이 나곤 한다. 어쩌다 미술이 이렇게 변했을까?

현대미술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미술사의 이 급진적 변화는 실은 19세기 중반부터 차근차근 준비되어 왔다.

이른바 ‘고전미술’의 이념은 19세기 중반에 여기저기서 거센 도전을 받게 된다. 여기서 ‘고전미술’이라 함은 르네상스에서 고전주의를 거쳐 신고전주의로 이어지는 서양미술사의 주류를 가리킨다. 물론 주류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마니에리스모(manierismo), 바로크(baroque)나 로코코(rococo), 혹은 낭만주의를 생각해보라.

하지만 이 일탈마저도 전체적으로 보면 여전히 전체적으로 보면 여전히 고전미술의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500년 동안 지속되던 이 강고한 고전미술의 이념이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미술의 ‘현대성’이 이미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살펴보려면 먼저 무너진 그 ‘고전미술’의 이념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썩 좋은 구분법은 아니나 일단 회화를 ‘내용’과 ‘형식’으로 구분해보자.

미술의 ‘내용’은 크게 ‘제재(subject)'와 ’주제(theme)'의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 ‘제재’가 그림의 소재라면, ‘주제’는 그 그림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한편 회화의 ‘형식’은 크게 ‘형태(form)’와 ‘색채(color)’의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 화면의 형태를 그리는 것을 ‘소묘’라 하고, 거기에 색을 칠하는 것을 ‘채색’이라고 한다.

이제 고전미술의 ‘내용’과 ‘형식’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먼저 형식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르네상스 이후 500여 년에 걸쳐 서양미술을 지탱해 온 기본적 규약은 ‘원근법’이었다. 원근법은 한마디로 2차원 평면에 3차원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중세미술의 화면은 어디까지나 2차원 구성의 ‘평면’이었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x, y축에 새로 z쪽을 추가하여 평면 위에 3차원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내려 했다.

원래 원근법은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건축주에게 앞으로 지어질 건물의 완성된 모습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 개발한 투시법이다. <그림 1>이 기술은 그의 나이 어린 제자이자 친구인 마사초에 의해 처음으로 회화에 도입되기에 이른다. <그림 2>

▲ (그림 1) 성 로렌초 성당의 원근법적 투시도.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15세기 초
▲ (그림 1) 성 로렌초 성당의 원근법적 투시도.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15세기 초
▲ (그림 2) 삼위일체. 마사초. 1425-1428년
▲ (그림 2) 삼위일체. 마사초. 1425-1428년

중세의 장인들은 중요한 인물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인물은 그보다 작게 그리곤 했다. 묘사하는 대상의 크기를 ‘심리적으로’ 결정한 셈이다.

반면에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거리에 따라 대상의 크기를 기하학적으로 축소시켜 나갔다. 중세의 장인들이 세계를 ‘아는 대로’ 그리려 했다면,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보이는 대로’ 그리려 했다.

중세의 장인들이 그림을 ‘신학적 관념의 표현’으로 여긴 것과 달리,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그것을 ‘가시적 세계의 재현’으로 여긴 것이다.

이들이 가시적 세계를 재현하려 한 것은 물론 그 세계가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중세인들은 현세를 경멸하는 경향이 있었다.

중세의 화면은 다수의 이질적 공간들의 짜깁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안에서는 묘사된 대상 하나하나가 제 주위에 저만의 공간을 품고 있어 그것들이 화면 안에서 서로 충돌되기도 한다.

반면에 원근법적 화면은 단 하나의 시점으로 구축되기에 그 안에는 단 하나의 등질적 공간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많은 대상이라도 서로 충돌하는 일 없이 그 안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들어갈 수가 있다.

르네상스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이처럼 대상을 그리기 전에 일단 원근법을 이용해 공간부터 구축하고 들어간다는 점에 있다. <그림 3> 이는 향후 500여 년 동안 회화에서 거의 헌법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 (그림 3) 이상 도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15세기
▲ (그림 3) 이상 도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15세기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원근법으로 구축한 그 공간 속에 대상을 그려 넣는 일일 것이다. 화가이자 저자인 알베르티는 재현의 원리를 ‘시각 피라미드’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는 먼저 우리 눈에서 수많은 가닥의 시각 광선이 대상을 향해 뻗어나간다고 가정한다. 이 광선들은 투명한 것을 뚫고 돌진하다가 불투명한 대상을 만나면 그 가장자리에 점을 찍고 들러붙는다.

이때 눈과 대상 사이에는 수많은 가닥의 광선들로 이루어진 시각 피라미드(혹은 시각 원뿔)가 형성된다.

눈과 대상의 특정 지점에서 그 시각 피라미드의 횡단면을 취하면 거기에서 해당 시점에서 바라본 대상의 형태가 얻어진다는 것이다. <그림 4>

▲ (그림 4) 시각 피라미드의 묘사, 뒤브뢰유
▲ (그림 4) 시각 피라미드의 묘사, 뒤브뢰유

문제는 가상으로 존재하는 그 피라미드의 횡단면을 어떻게 취하느냐는 것이다. 독일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는 우리에게 두 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하나는 눈과 대상 사이에 그리드(grid)를 설치해놓고, 그 그리드 각각의 칸에 걸린 대상의 형태를 동일한 간격의 그리드가 그려진 화면 위에 그대로 전사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솜씨와 눈썰미가 필요할 게다. 이보다 더 기계적인 방식도 있다.

즉, 벽에 박은 못에 실을 묶어 자리를 옮겨가며 대상의 가장자리에 갖다 대고, 그때마다 매번 실이 중간의 프레임을 지나는 위치를 포착하여 화면 위에 기록해 나가는 방식이다. <그림 5>

▲ (그림 5) 원근법의 증명. 알브레히트 뒤러. 1525년
▲ (그림 5) 원근법의 증명. 알브레히트 뒤러. 1525년

 

다음 호에 계속 ▶

 

 

목차
0. 고전미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고전미술의 붕괴
2. 유럽의 시대정신
3. 혁신을 위해 과거로
4.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5. 인상주의의 탄생
6. 순수 인상주의자들
7. 인상주의를 벗어나다
8. 색채와 공간의 분할
9. 현대미술을 예고하다
10. 지각에서 정신으로
11.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의 가교
12. 감각을 실현하라
13. 자연미에서 인공미로
14. 모더니즘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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