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 질문했다. 설마 선생님께서 자신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을지문덕 장군, 강감찬 장군,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그리고 맥아더 장군 등 훌륭한 분 가운데, 고민 끝에 한 명을 택했다.

위인들의 전기나 무용담을 읽거나 듣고 나름 성장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마음의 꿈도 심었었다. 당시에는 북한을 북괴라 불렀고, 중국을 중공이라 불러서 가장 나쁜 적과 오랑캐로 여겼던 주관식 답변조차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키가 자라고 마음이 성장하고, 사회에서 활동했던 늦깍이 치대생이었던 필자는 치과대학 졸업 즈음 심각히 고민했던 가장 큰 화두는 졸업하면 어디에 개원하느냐 였다. 후배들은 당연히 “형은 어디에 개원할거야”며 형이 가장 먼저 개업할 것이라고 판단했고, 치대 6년 동안 그 질문과 답을 반복하며, 진전 없는 확답을 주고받고 졸업을 맞이했다.

어제 50대 여성 환자 한분이 신환으로 왔다. 진료 중 울려 퍼진 전화벨소리에 진료를 잠깐 멈추고, 굳이 전화를 받겠다고 하여 통화하도록 했다.

본의 아니게 들은 내용으로는 남편과의 대화에서 통장과 계약금 그리고 요즘 핫한 비트코인 이야기로 시간이 조금 길어졌고, 동시에 진료어시스트 중에 있었던 인턴 선생, 원내생 등과 눈을 마주치며 깜짝 놀라서 부러움을 그분의 등 뒤로 쏘고 있었다.

오전에 잠깐 사고팔아 이백을 벌었고, 건물계약금 때문에 은행에 머물고 있는 남편의 기다림이 마지막 내용으로 정리되며, 다시 진료포지션으로 돌아온 환자를 보며, 갑자기 존경심에 마저 드는 마음으로 나조차도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 연령대에 컴퓨터와 휴대폰을 활용하여 수개월간 최첨단의 앞선 미래를 생활의 터전으로 살고 있는 초로의 부인을 어깨 위의 20-30대 젊은 치과의사나 예비치과의사들은 순간순간 바보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졸업 후 20년 가까이 한길만 바라보았던 나처럼 내 주변의 젊은이들도 그렇게 살아갈 것 같은데. 진료를 마친 뒤 그 환자의 마지막 얘기가 더 가관이다. 내가 별 볼일 없어 보여도 자랑할 것이 많다는 것이다. 졸부들이 그런 특성인가? 내 천성에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거나 우습게 보는 항목이 없다보니 그리 보진 않았지만 조금은 얄미웠다.

요즘은 환자 진료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노후에도 기여될 것 같아 부지런히 익히며, 환자도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다음환자를 눕혀놓고 잠시 틈을 내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달걀 세우기 일화를 들으며 먼저 생각하고 도전한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비트코인도 4차 산업시대의 대세이며, 개천에서 용이 나지 못하는 요즘 시기에 서민부자 탄생이라는 긍정의 가능성도 언급해 보았다.

인간은 지극히 지적 신체적으로 평등하기 때문에 능력 차이는 그다지 없지만, 그 속에 있는 작은 차이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사회는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좋은 학벌, 좋은 가정은 세습될 확률이 높고, 더욱이 결단코 부는 넘사벽이 되어 버린 시대에 상승의 기회를 찾는다는 것은 모두에게 희망이 될 수 있어서 오늘 비트코인으로 등장한 환자분의 모습은 희망적이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치과의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잘못된 일부 치과의사들의 비도덕성 때문에 조금은 흐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의 지도층이며, 선망의 대상이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직업을 상징한다. 더욱이 사회적 신뢰를 받기 때문에 이슈화의 주인공으로도 자리 잡고 있다.

때로 다른 길을 걸었던 선배들 가운데,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계의 모델들이 나타났고, 사회문화계에도 숨겨진 보물들이 있다. 그러나 직업선택의 자유가 극히 제한되어 졸업 후 할 수 있는 직업이 수개에 불과하다.

치과의사사회 내부적으로 보면, 필자도 지금까지 객관식 치과의사로 살아왔으며, 사회를 탓할 수만은 없기에 선배 치과의사로서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리고 나보다 더 앞선 선배들은 대부분의 개원과 일부 공직의 길 외에 선택의 길을 왜 만들지 못했을까?

이쯤해서 후배들에게 주관식 치과의사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나만의 답은 매우 간단하지만 경험의 부족으로 여전히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바로 잘못된 가설이나 가정에 빠졌던 것이다.

‘치과대학을 졸업한 것이 아니라 대학을 졸업했다’ 라는 가정에 선다면 치과의사의 길은 그만큼 다양해질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보니 특별한 재능 하나가 더 주어졌는데, 그것이 치과의료 지식과 기술이었다.

비트코인도 아니고 명쾌한 해답으로 결론지을 수는 없지만, 치과대학을 졸업한 것이 아닌 대학을 졸업했다고 가정한다면 앞으로도 어디든 필요로 하는 곳에 머물고 싶다는 답으로 결론 짓게 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박용덕 교수는 경희대학교 치의학박사를 거쳐 경희대학교 교수와 식약처 중앙약사심의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조선대학교 치과대학부속병원 예방치과에 재직 중이다. 대한구강보건협회 부회장과 법원전문심리위원, 신의료기술평가위원, 보건복지인력개발원 해외환자 유치프로그램자문위원장, 대한미래융합학회 초대회장, JTBC 공정방송위원회, 심평원 의료행위평가위원 위원과 제14대 아시아예방치과학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덴탈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