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 <Doctor's Dilemma>의 내용을 강명신 교수가 저자인 철학자 고로비츠 교수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각색하여 세미나비즈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강: ‘인폼드 컨센트(informed consent)’로 여덟 번째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인폼드 컨센트라는 규칙을, 의사의 도덕적 불운의 책임으로부터 면해주는 규칙으로 보는 입장을 살펴봤어요.

샘: 그랬지요. 그건 그렇고, 강선생이 오늘 살펴보겠다던 ‘민주주의와 기술관료주의(테크노크라시)’의 문제를 책에서 설명한 의도는 의사-환자 관계에 대해서 당장 무슨 직접적인 지침을 준다는 건 아니에요, 그건 분명히 해둡시다.

강: 예, 선생님. 민주주의와 테크노크라시의 문제는 대중일반의 이익에 연관된 사회적 쟁점에 대해 국민 일반 혹은 국민의 대표가 결정하느냐 아니면 기술 엘리트가 결정하느냐의 문제이니까, 임상의사결정의 문제와 유사성이 있다고 보신 거죠.

샘: 그렇죠. 유사성 자체가 요지는 아니고요.

강: 요지는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 연관된 기술적 지식에 대해 어떤 이가 우월하다는 사실에서부터 그가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자동 도출되는 게 아니다’라는 거라고 하셨어요.

샘: 그래요! 의료에러에서 이야기한 대로 전문가라고 완벽한 지식을 갖춘 것도 아니고, 전문가가 아니라도 임상의사결정이라는 목적에 충분한 정도의 이해는 가능할 수 있고요.

강: 그런데요, 선생님. 의사가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하는, [환자가 결정하여야 한다]라는 주장의 논거를 보면 첫째, 공리주의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는 누구보다도 당사자가 제일 잘 안다는 주장을 했어요.

샘: 둘째, 밀이 또 자유론에서는, 누가 대신 결정해주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데에 긍정적 가치가 있다는 점을 확실히 했죠.

강: 예. 그리고 셋째로는, 무엇이 환자에게 좋은가라는 문제와 별도로, 결정할 권리가 환자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입장이 있어요.

샘: 세 가지 모두 일리가 있어요. 이번엔 처음에 관건이 되었던 환자의 지식 요인에 초점을 맞춰볼까요? 아예 아무 것도 모르는 지점부터 의사에 비교될 만큼 아는 지점까지의 스펙트럼이 있어요. 그런데 목적에 충분한 정도의 지식이 중간 어디엔가 위치할 겁니다. 그렇죠? 그 지점 이하에서는 온정적 간섭주의가 힘을 얻고, 그 지점 이상에서는 환자의 자율성 존중 원칙이 힘을 얻을 겁니다. 그러니까 환자의 지식부족을 강조하면서 환자가 결정한다는 ‘인폼드 컨센트’에 반대하는 건 이 점에서도 옳지 않아요.

강: 그리고 또 지적하신 게, 환자의 이해정도를 평가하고 환자가 충분한 정도의 정보를 갖게 하는 것이 의사의 노력에 달린 문제라고 하셨어요.

샘: 사실 그게 인폼드 컨센트 규칙에서 요구하는 거잖아요?

강: 예, 환자가 자율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역할도 의사의 일이라고 하셨죠.

샘: 결국 말이죠. 의학적 필요가 어느 정도 충족될 수 있는지 아는 것은 의사의 일이고, 그 필요의 충족이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지는지는 결국 환자가 챙길 일이에요. 그런 점에서, 모든 결정이 그렇지만, 의학적 결정도 역시 늘 가치에 관한 결정이기도 하지요.

강: 예, 바로 그 말씀은 다음에 더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강명신 교수는 연세대 치대를 졸업했으며, 보건학 박사이자 한국의료윤리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연세대와 서울대를 거쳐 지금은 국립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뉴욕 타임즈에 실린 의학관련기사를 통해 미디어가 의학을 다루는 시선을 탐색하는 글로 독자들과 만난 바 있다. 강 교수는 현재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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