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은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는 위험의 분산과 소득의 재분배라는 보험의 기본적 목적과는 거리가 먼 기형적인 것이었다. 오히려 소득의 역진을 부추기는 측면이 컸다. 당시 500인 이상의 사업장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안정된 소득원이 보장된 부류이었을텐데, 정작 고용이 불안정하여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전혀 아무런 혜택도 줄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보험 대상자에게서 입은 의사의 손실을 보충해 주는 역할마저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현상을 몰랐을 리 없는 정부는 점차 보험 대상자를 확대해 간다. 그리하여 1989년에는 드디어 전국민 의료보험 시대가 열리게 된다.

물가인상에 따른 정기적 인상은 있었지만 진료행위별로 매겨지는 수가체계와 고질적인 저수가 정책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렇다고 급여의 범위가 넓어진 것도 아니었다. 조금 중한 병에 걸린 환자는 보험에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산을 탕진하지 않을 수 없는 저수가ㆍ저급여의 고질적인 병폐가 계속되었다.

이는 의사의 입장에서도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는데 그들은 이것을 타개할만한 합법적 정책 수단을 갖고 있지 못했다. 80년대 말에 이르면 노동운동이 최고조에 이르고 부문별로 자신의 이권을 지키려는 운동이 활발해졌지만, 의사가 노동운동에 편승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들은 손쉬운 타협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의약품 거래과정에서 저수가 정책의 손실분을 만회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할증과 리베이트, 랜딩 등의 비합법적 관행이 정착된다.제약기업과 의료기관의 조직적 야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의약분업은 이러한 관행을 불식시키지 않고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정책이었다.

의약품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보험재정을 안정시키겠다는 목표는 나무랄 데 없으나, 좋은 정책은 현실적 정책수단 없이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애초에 이 정책은 의료기관의 손실보전에 대한 대책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의사들이 과거처럼 순응해 줄 것으로 믿었던 순진함이 너무나 큰 화를 부른 것이다. 더구나 이 정책의 추진 주체인 정부는 소수정권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쓴 약체정부였다.

결국 의료대란은 치밀한 사전 준비 없이 명분에 치중한 정부와 실리에 집착한 의료기관간의 힘겨루기로 치닫게 된다.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실종되고, 대체조제나 처방전의 발행 매수, 일반약의 슈퍼판매 등 지엽적인 논쟁에 모든 정열을 쏟아 붓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연출된다.

이번 사태에서 의사들은 대규모 집회와 파업 투쟁을 통해 그동안 억눌려왔던 자신들의 울분을 터트릴 수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진지한 성찰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는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다음 호에 계속 ▶

 

강신익 교수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강신익치과를 개원했었다. 다시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치과과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부산대학교 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서로는 『의학오디세이(역사비평, 2007)』, 『철학으로 과학하라(웅진, 2008)』, 번역서로서는 『환자와 의사의 인간학(장락)』, 『사화와 치의학(한울, 199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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