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신 교수의 The New York Times 읽기

“앞으로 연구하게 될 때를 대비해서 환자분의 조직 샘플을 저장해두려고 합니다. 어떤 연구에서 어떻게 쓰이게 될지 지금 당장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연구목적으로 환자분 의무 기록을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프라이버시 보호 조치는 취할 것입니다. 또 연구를 위해서 다시 연락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앞으로는 이렇게 동의를 구해서 저장한 조직 샘플만을 연구에 이용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동의서 양식에는 그 조직을 이용한 연구로 상업적 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적고 생긴 이익에서 환자에게 보상은 어떻게 할지를 적도록 하는 법 개정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국정부는 법 개정을 앞두고 지난 6일까지 정부 웹사이트 공보를 통해 공청 기간을 거쳤다. 1970년대에 나온 연방법, Federal Policy for the Protection of Human Subjects(Common Rule)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의견이 이어져왔고,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국가 생명윤리 위원회에서도 조직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감독체계에 대한 문제를 다룬 보고서까지 나왔는데 그동안 유명무실해진 상황이었다.

1951년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헨리에타 랙스라는 여성 환자의 자궁경부암 조직생검이 십 년 앞서 나온 팝 도말 검사법으로 이루어진다. 당시 존스홉킨스 조직배양 연구책임자였던 조지 가이(George Gey)의 실험실에서(헬라 HeLa) 세포 주로 확립되어 전 세계로 퍼졌다. 인체 유래의 가장 오랜 세포배양주로서 전 세계적으로 20톤 정도 배양되었고 이 세포와 연관된 특허만 해도 1만 1,000건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헬라세포는 세포배양 기술의 표준화부터 시작해서 195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의 소아마비 백신 개발, 항암제, 체외수정, 유전자 매핑, 세포 복제 등 20세기의 중요한 의학적 발견과 역사를 함께 했다. 헨리에타가 사망한 지 30년이 지나서 인체유두종바이러스(HPV)의 변종 중에서 병원성이 가장 강한 HPV-18에 감염되어 헨리에타의 암이 발생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40년이 지난 후 암세포에서 텔로머라제(telomerase)라는 효소가 세포에서 지속적으로 텔로미어를 재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죽지 않는 헬라세포의 비밀도 풀렸다고 한다. 그러나 헨리에타가 남긴 다섯 자녀들은 20년이나 지나서야 어머니의 세포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출판물에 헨리에타의 실제 이름이 처음 등장하고 신원이 밝혀진 것은 1971년 12월에 Obstetrics and Gynecology라는 산부인과 학술지에 헨리에타의 주치의였던 산부인과 의사 하워드 존스(Howard Jones)와 동료들이 헬라 세포주를 확립한 조지 가이(George Gey)의 업적을 기리는 논문을, 헨리에타의 사진과 함께 실으면서부터다.

2010년에 나온 The Immortal Life of Henrietta Lacks(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김정한/김정부 옮김, 문학동네)에 나온 이야기다. 미국 남부의 담배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 여성 헨리에타와 그 가족의 역사, 그리고 헬라세포에 얽힌 의학적 발견의 역사를 생물학을 전공한 저널리스트가 발로 뛰어 기록한 책이다. 저자 레베카 스클루트는 한 지방대학 강의실에서 고등학교 학점을 보충하려고 수강한 강의에서 헨리에타 랙스라는 이름을 듣게 된다. 당시 선생님은 세포의 경이로움을 알려주면서 그 모든 지식이 한 흑인 여성의 암세포를 배양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헬라 HeLa) 세포야말로 지난 세기 의학계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고 했다. 헨리에타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선생님을 따라가서 물었지만 모른다고 했다. 레베카는 생물학으로 학위를 하는 동안 어디서나 헬라세포를 만났지만, 헨리에타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만나지 못했었다.

아직까지는 익명화만 하면 혈액검사나 생검 또는 외과수술로 절제한, ‘임상 생검 조직표본’을 동의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DNA와 공개된 개인 정보를 이용하면 익명화된 샘플의 개인 식별이 다시 가능한 시대이다. 실제로 2013년 헬라 지놈의 염기서열이 유럽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는데, 유전정보를 해석하는 일종의 위키피디아 사이트인 SNPedia라는 웹사이트에 이 정보를 올리자마자, 수분 만에 헨리에타 랙스와 그 가족들의 신원정보가 더해진 보고서가 완성되는 일도 있었다. 익명화만 하면 환자의 조직표본을 연구에 사용할 때나 유전 정보를 공유 또는 탑재할 때 사전동의가 필요 없다는 것은 옛말이 되었다. 화이트헤드 생의학 연구소 소속 과학자 야니브 엘리히의 말대로, 익명성은 DNA와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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