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신교수의 The New York Times 읽기

미국 NIH 산하 NIA(National Institute on Aging)에서 시행하는 Health and Retirement Study에 의하면 2000년 사망자의 47%가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둔 것으로 조사됐으며, 2010년엔 그 수가 72%로 증가했다. 1990년 의회가 환자자기결정권법(PSDA, Patient Self-Determnination Act)을 통과시킨 이후, 의료계와 소비자단체가 사전의료의향서(AD, Advance Directives) 캠페인을 벌여 성인이면 누구든지 작성해서 가족과 의사에게 주라고 했다. AD의 유형은 첫째, 생전 유서(Living Wills)로 본인이 의사결정을 할 능력이 없을 때를 대비해 사전에 특정 의료를 수용 또는 거부할 의향을 표시해두는 것이다. 둘째는 대리인 지정서가 있으며, 셋째는 이 두 가지를 조합한 형식이다.

문제는 작성 건수가 아니라 활용도인데, 이 문제를 지적한 글이 실렸다. 의사결정을 해야 할 시점에 문서가 의료진의 손에 닿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데 일단 보관 장소가 문제라고 한다. 개인금고나 변호사 사무실 파일에 있는가 하면, 성경책에 끼워져 있는 경우도 있다. 폴라 스팬(Paula Span)이 글에서 거론한 사례처럼, 의무기록에는 끼워져 있었는데 의료진이 못 본 경우도 있다. 가족 동의를 얻어 연명의료를 개시했다가 나중에 환자가 그것을 원치 않는다고 적어 둔 문서를 발견하는 경우다. 가족과 의료진이 본의 아니게 환자의 뜻을 거스른 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해뒀고 발견됐어도 그걸 언제 발동시켜야 하는지 분명치 않은 점은 도입 초기부터 지적된 바 있다. 그리고 용어가 구체적이지 않은 것도 문제다. 또한 응급상황에서는 사전의료의향서 내용을 불문하고 일단 소생을 시도해야 한다는 항시적 오더를 따라야 한다. 심폐소생금지(DNR)오더나 연명의료계획서(POLST, Physician Orders for Life-Sustaining Treatment)가 없으면 응급상황 해결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에 관한특별법에 해당하는 응급의료 및 응급출산에 관한 법(EMTALA, Emergency Medical Treatment & Labor Act)에 근거해서다 .

진료 당시에는 환자의 바람이 사전의료의향서 문서보다 우선한다. 1983년 대통령 위원회는 사전의료의향서가 있더라도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환자에게는 동의를 구하도록, 그리고 의사결정능력이 의심스러워도 일단은 있다고 가정하고 먼저 물어보도록 권고하고 있다.

POLST는 사전의료의향서를 보완해준다. POLST는 어느 연령이든 병태가 중한 환자가 현재 또는 앞으로 닥칠 상태가 어떨지 의사와 상의해 함께 작성한 것이다. 그러니 사전의료의향서와 달리 POLST를 보면 의료진이 어떤 진료를 해야 할지 알 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POLST 역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병원과 너싱홈, 호스피스 사이의 공조체계가 필요하다.

오리건 주나 웨스트버지니아 주는 전자등록으로 이 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해나가고 있다. POLST는 뉴욕 주에서 Molst, 콜로라도 주는 MOST 등으로 이름이 다른 경우도 있지만 이미 15개 주에 있고 24개 주는 현재 개발 중이라 한다.

스스로 의사를 밝힐 수 없을 때 대신해 줄 가족, 친구와 말기 및 임종기 의료에 대해 대화를 꾸준히 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사실 이런 대화를 시작하게 한 것이 사전의료의향서가 미국에서 달성한 가장 중요한 성취라는 평가도 있으니 우리도 POLST와 사전의료의향서를 그런 측면에서 알려나갈 필요가 있다.

환자자기결정권법은 환자의 몸에 행해지는 의료에 대한 환자 본인의 의향을 존중하자는 취지의 입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연명의료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 판결 이후 사회협의체와 국가생명윤리위원회를 거쳐 권고안이 정부에 제출 됐고 입법 논의가 한창이다. 모두가 맞이할 인생 마지막의 의료와 돌봄에 관한 대화가 정책이나 입법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확산되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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