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아비뇽의 여인들 1097년, 캔버스에 유채, 243.9cm/233.7cm 뉴욕현대미술관
피카소 아비뇽의 여인들 1097년, 캔버스에 유채, 243.9cm/233.7cm 뉴욕현대미술관

 

입체파 미술 (Cubism)

입체파 미술은 20세기 초 파리에서 피카소와 브라크를 중심으로 전개된 혁신적 예술운동으로, 자연을 재구성할 것을 목표로 한 세잔의 기하학적 이론의 영향 아래 환원적 형태와 복수시점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던 미술사조이다. 이들은 당시 인상파와 야수파의 작품이 너무 감각적 색채에만 치우쳐 있다고 비판하고, 미술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통해 사물의 형태가 지닌 입체적 리얼리티 표현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최초 브라크의 작품 「에스타크의 집」에 대해 ‘입체(Cube)’라는 조롱조의 별칭으로 시작된 입체파 미술은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1906~1907)」을 그 최초의 출발점으로, 발전 양태에 따라 초기 입체파, 분석적 입체파, 그리고 종합적 입체파 단계로 구분되고 있다. 1908~1909년 사이 세잔식 입체파로 불렸던 초기 입체파 단계는 흑인 조각의 영향과 세잔의 조형사고와 형태이론을 토대로 대상의 존재성을 포착하고자 한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위해 대상의 단순한 감각적 표현을 부정하고,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관찰하여 분해, 단순화하여 화면에 재구성하였다. 이후 1910~1912년 대상의 형태에 점차 섬세한 면 분할을 가하여 기호화, 추상화된 이미지를 만들어 낸 ‘분석적’ 큐비즘 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잃어버린 대상의 현실적 존재성과 일상성을 회복하고자 ‘파피에 콜레’ 기법과 의도적인 색채와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종합적’ 큐비즘 단계로 전개된다.

기존의 미술에서 자유로웠던 입체파 작가들은 레제의 말처럼 “미술은 모방이 아니라 창조이다.”라는 신념으로 미술에서 소재의 중요성보다는 소재를 어떻게 해석하고 재현할 수 있는지를 주목하고, 불안정하게 해체된 형태들과 문자같은 비회화적 요소들로 하나의 낯선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그들은 대상의 표현에 있어 보다 대상의 입체적 표현과 화면 자체의 구성에 초점을 맞추어 보이는 것의 표현이 아닌 인식하는 것의 표현이 되게 하였다.

즉, 대상에서 출발하기는 하나, 최종적인 그림은 대상의 현실적 요소를 최소화시킨 화면에서의 순수한 형식적 구성이 되고 있다. 이것은 회화의 가치를 세계의 재현 혹은 대상의 모방에서 찾았던 전통적인 개념을 거부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입체파 미술은 지각의 동시성, 회화의 평면성 등을 통해 자연의 모방에 필요한 원근과 명암 등 전통 미술의 근본을 완전히 거부함으로써 뛰어난 실험적 가치를 지닌 20세기의 주요 미술운동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회화는 현실 적 세계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자율적인 영역이므로 회화적 매체 자체에서 회화의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미술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20세기를 여는 현대미술의 한 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 운동의 중심작가들은 몽마르트르에 거주했던 피카소, 브라크 등이었고, 그 밖에 화면에 밝은 색채와 다이내믹한 율동을 도입했던 F. 레제와 R. 들로네 등이 있다. 운동으로서의 입체파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종말을 맞았으나. 그 성과는 그 후의 미술과 영화, 디자인, 건축 등을 포함한 모든 예술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입체파 미술의 전개

인상파와 야수파의 색채주의에 반동하였던 입체파 미술은 무엇보다도 형태(forme) 의 존중과 화면구성에 그 특징이 있다. 입체파의 출발은 자연을 재구성할 것을 목표로 한 세잔에서 원류를 찾을 수 있는데, 대상에 대한 시점)을 복수화하고, 제한된 색채 사용과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상으로 환원함으로써 사물의 존재성을 구축하여 평면에서의 리얼리티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이들의 입체주의적 화면구성의 원리는 이제까지의 고전주의적 원근과 명암 등 서양미술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입체파 미술의 주요 특징을 정리해 보면, 먼저 자연의 대상을 여러 가지 형태의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상으로 환원하였으며, 이러한 사물의 존재성을 분석적으로 파악하여 이차원의 평면 위에 구축적으로 재구성하였다. 또한 콜라주와 파피에 콜레를 최초로 도입하였다는 점 등 또한 특징적이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과 브라크의 「에스타크의 집」을 발표함으로써 구체화된 입체파 미술은 오늘날까지도 대중들에게 인식되어 온 ‘현실의 재현’이라는 전통적인 미술의 개념을 바꾸게 했던 혁신적 미술이었다. 전통과의 단절이자 20세기 미술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입체파 미술은 그 시기와 발전단계에 따라 초기 입체파(1907~1909), 분석적 입체파(1909~1911), 종합적 입체파(1912~1914) 등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초기 입체파 (세잔식 입체파, 1907~1909) 

초기 입체파기로 분류되는 이 시기는 세잔의 조형원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새로운 양식을 확립하게 된 시기로 세잔식 입체파로도 불린다. 이 시기는 세잔의 구성원리에 충실하게 따른 시기로 대상의 표현에 강한 명암을 지양하고 아프리카 조각에 가까운 인물을 표현하였다.

또한 현실적 대상의 파악에 있어 녹색과 황토색으로 한정하고 시점을 복수화함으로써 대상을 단순화시키고 입체적 표현에 주력하였다. 최초의 입체파 그림으로 알려진 1907년 피카소의 대작 아비뇽의 여인들은 혹은 조각의 영향을 받은 인물 표현이나 전통적 명암이 사라진 파격적인 그림이다.

이 작품에서는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복수시점과 촉각적 평면구성’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입체파적 표현이 시도되고 있다. 특히 1908년 브라크의 「에스타크의 집」은 전통적 기법과 다른 “자연을 원통형, 구체, 원추형으로 처리하라.”는 세잔의 대상 속 입체적 표현의 원리를 직접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실제 현실적 대상의 태는 기하학적으로 환원시키고, 색채도 녹색과 황토색만으로 한정시킴으로써, 회화 평면과 현실 공간의 입체감과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실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결과적으로 초기 입체파 시기는 회화에서 복수시점을 통한 동시성, 지속성, 변형성이 추구되었던 시기로, 피카소와 브라크는 그들의 작품 속에서 모방이라는 전통에 벗어나 대상을 새로운 방식인 대상의 형태를 분해하여 여러 측면을 동시에 묘사함으로 써 대상의 리얼리티, 즉 실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회화면 속에 제시하게 되었다.

분석적 입체파 (1910~1912)

분석적 입체파기는 형태를 입체적으로 분석하여 표현하는 세잔풍의 입체적 표현기인 초기 입체파기를 거친 1910년 이후의 입체파 시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특히 ‘복수시점’을 극단적으로 실험하였는데, 대상이 지닌 형태적 특성을 가능한 여러 시점에서  파악하여 해체된 공간의 파편화된 면들을 평면화시키는 단계를 보여 준다. 즉, 하나의 형태를 기존과 같이 한 방향에서만 바라보아서는 평면에 표현할 때 그 형태의 완전한 모습을 그려낼 수가 없다고 판단한 이들은 사방에서 그 사물을 바라본 후 이것들을 하나로 종합하는 방법으로 대상을 묘사한다.

예를 들어 특징적인 형태만을 취하여 표현하는 이집트 벽화에서처럼 한 인간의 얼굴표현에 있어 동시에 정면, 측면 또는 여러방향의 얼굴을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면의 이미지는 대상의 극단적인 해체와 분할, 시각적 확대에 따라 형체는 전후 좌우로 서로 뒤섞여지면서 마치 거울면의 난반사를 방불케 한다. 주제의 경우도 일상적인 인물, 집이나 수목에서 한 걸음 나아가 과실 · 술병·컵 등의 정물적 모티브가 주를 이루며, 다시 기타 · 만돌린·바이올린 등의 악기가 등장하고 있는데, 이 역시 다시점적 시각을 통한 동시적 형태와 다원적인 전개를 통해 나타내게 된다. 결과적으로 대상의 리얼리티는 부정되고 화면 자체의 구성에 집중함으로써 일상의 눈으로 형태의 파악이 어렵게 되었으며, 사물의 감성적·정서적 느낌의 표현은 불가능하였다.

이와 같은 실재적 이미지 공간과 입체표현의 한계를 인식한 분석적 큐비즘은 1912년 경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실제 벽지, 나무무늬, 상표 등을 화면에 오브제로 붙이는 파피에 콜레 기법을 시도하게 되면서 종합적 큐비즘으로 이행하게 된다.

이 시기 피카소와 브라크의 작품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아 있었으나, 두 작가에게는 기질적으로 또한 작품의 표현스타일에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먼저 기질적인 면에서 스페인적인 기질의 피카소는 침울하고 극단적이며 혁명적이었던 데 반해 도시적이었던 브라크는 고상하고 특출한 조형능력의 소유자였다.

작품의 특징에서도 피카소는 입체적이고 표현적인 특질을 지닌 반면 브라크는 서정적 감정을 유지하면서 섬세하게 다뤄진 질감에 충실하였다. 또한 브라크는 공간을 물질화하여 대상의 형태를 파편화시켜 평면적으로 구성하는 것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이러한 특징들은 서로의 작품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브라크의 영향을 받은 피카소는 체계적이고 사려깊은 집중력을 가진 작업을 하게 되었고 특출한 조형적 상상력의 소유자인 브라크는 고전주의적 절제와는 전혀 다른 화려하고 역동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됨으로써 보다 체계적인 입체파를 발전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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