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 (The Boy in the Red Waistcoat)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 ,1894-1895, Oil on canvas, 80 × 64cm, 스위스 취리히, 뷜러 컬렉션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 ,1894-1895, Oil on canvas, 80 × 64cm, 스위스 취리히, 뷜러 컬렉션

세잔만이 가능했던 붉은 조끼입은 소년은 당시로는 매우 혁신적이었던 세잔 특유의 양식으로 그려졌다.이 작품은 인상주의에 강렬한 고전주의적 주지주의가 혼합되어 완성된 그림이다. 세잔은 붉은 조끼를 입은 이 모델의 초상을 적어도 4번 이상 그렸는데, 이 작품의 특징은 인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포착하는 데 있다. 세잔은 사물의 본질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인물의 형태를 왜곡하는가 하면 여러 시점에서 본 사물의 모습을 하나의 평면에 재조립 하였다. 이 작품에서도 소년의 오른쪽 어깨가 유난히 길게 표현된 것은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본 시점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 외에도 화면에서 빛나는 특유의 선명하고 단순한 형태의 붉은색, 갈색, 파란색, 청록색, 흰색 블록이 두드러져 보이는 이 그림은 색채와 형태면에서 놀랍도록 현대적이며 감각적이다.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에 사용한 색채를 차용하면서, 제한된 색채는 조화를 창출해 내는 점에서 세잔의 탁월한 역량을 볼 수 있다. 모델의 피부와 셔츠에 드리운 청록색 그림자는 이 그림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모델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같은 면에 위치시킨다. 왼쪽의 커튼, 소년의 구부린 등, 그의 원팔, 그림의 표면에 놓여 있는 오른팔이 이루는 일련의 사선들이 서로서로 엇갈리고 있다. 세잔은 평범한 장면을 분해한 다음 그것을 화면 위에서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 나갔다.

이 작품에서 세잔이 주목한 핵심적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대상의 구조적 파악에 있다. 이는 견고한 세계를 평면 위에 구축하기 위한 첫 단계로 정확하고 합리적인 대상의 분석적, 구조적 파악을 전제한다.

둘째는 파악된 대상을 이차원적 캔버스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것인가이다. 세잔은 둘 간의 문제를 독창적으로 해결한 대화가였다.

이로써 세잔은 '현대미술의 아버지' 소임을 다하고 브라크와 피카소에게 입체주의의 길을 열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강렬한 색채 역시 야수파에게 영향을 미쳤다.

「생트 빅투아르 산 (Mont Sainte-Victoire)」1885년 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 미국 보스톤박물관
「생트 빅투아르 산 (Mont Sainte-Victoire)」1885년 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 미국 보스톤박물관

 

생트 빅투아르 산 (Mont Sainte-Victoire)
인상파의 밝은 빛에 영향을 받았던 세잔이지만 파편적이고 가벼운 인상파의 화면 구성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밝은 빛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구조적인 회화공간 속에서 자리 잡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즉, 세잔은 인상파가 잃어버린 그 부분 형상의 복원과 조화로운 화면 구성을 인상파가 발견한 색채 용법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의지한 것은 오로지 그 자신의 고유한 '감각'뿐이었다. 그는 집요하고도 치밀하게 감각을 통한 대상의 관찰을 추구했고, 어느 서양미술사에 나 등장하는 이른바 그의 위대한 업적인 명암법과 원근법의 파괴는 단지 그 부산물로 나타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독특한 감각은 형상의 세부에 이르기까지 독창적인 색의 조합으로 채워 넣어 그 후 현대미술의 색채 사용의 선구가 됐다. 생트 빅투아르산은 바로 이러한 회화공간의 구조를 실험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대상이었다.

이 작품은 생트 빅투아르 산을 모델로 그린 것으로 중앙에 소나무를 배치한 대담한 구도가 돋보인다. 전경 왼쪽의 한 무리의 나무와 중앙에 소나무가 구축적인 수직선을 구성함으로써 열려진 수평적 화면의 광활한 공간에 깊이감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며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

1882년 이후 프랑스 남부인 엑상 프로방스에서 혼자 살게 된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에서 자신의 회화적 숙명을 깨닫게 된다.

실제로는 민둥산에 가까운 이 산을 세잔은 많은 작품에서 예의 회화적 문제를 해결하며 신비롭게 여러 가지 버전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세잔은 마지막 그의 그림을 그리러 가는 길에서 쓰러져 죽을 때인 1906년까지 자신의 고향에 있는 ‘생트 빅투아르 산’의 풍경을 거의 같은 방향에서 끊임없이 그린다.

1908년 세잔의 회고전에서 이 작품을 본 릴케는 "세잔은 종교를 그려냈다.”고 말하고 있듯이 세잔은 굽힘없는 의지로 자연에 대적하는 성스러운 예술을 창조하고 있다.

출처:현대미술의 이해 (홍창호교수 저, 양서원출판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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