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누구나 사람들과 교감하고 사회적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뛰어난 도구를 가지고 있다. 바로 ‘공감’이다. 
잘 개발해 적절히 활용한다면 우리는 남의 생각과 기분을 파악할 수 있다. 그들의 행동을 미리 예측하고 반발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릴 수 있다. 이렇게 유용한 도구의 칼날이 무뎌지는 이유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자기 안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누구나 나르시시스트(narcissist,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다. 우리에게 인생최대의 과제는 이 자기애를 극복하고 감수성을 내안이 아닌 밖으로 타인을 향해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중의 해로운 나르시시스트들을 알아볼 수 있어야만 그들이 꾸며낸 연극에 휘말리거나 그들의 시기심에 독살당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관심에 목마르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관심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다. 우리는 속까지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과 형성하는 유대관계에 나의 생존과 행복이 걸려 있다. 남들이 내게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는다면 내가 그들과 교감할 방법은 없다. 

관심 중에는 실제 몸으로 느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우리는 누가 나를 쳐다보고 있어야만 살아있음을 느낀다. 오랫동안 고립되었던 사람들이 증언하듯이 사람과 눈을 맞추지 못하면 우리는 나의 존재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깊은 우울에 빠진다. 그런데 관심에 대한 욕구는 또한 아주 심리적인 것이기도 하다. 

타인이 내게 주는 관심에 따라 우리는 그들이 나를 알아주고 인정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느끼는 나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인간이라는 동물에게는 관심이 어찌나 중요한지, 사람들은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범죄를 저지르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못할 일이 없을 정도다.

당신이 했던 행동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면 그 첫번째 동기는 언제나 관심에 대한 욕구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관심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키려다 보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다함께 나눠 갖기에는 관심이 ‘너무 적다’는 문제 말이다. 집에서는 형제자매와 경쟁해야 하고, 학교에 가면 같은 반 친구들과 직장에서는 동료와 경쟁해야 한다. 남들이 나를 알아봐주고 인정해주는 순간은 너무 순식간에 지나 가버린다. 사람들은 자기 문제만으로도 너무 바빠서 남이야 어찌 되든 말든 크게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대놓고 나에게 적대적이거나 나를 멸시하는 사람도 있다. 심리적으로 혼자라고 느끼거나 버려졌다고 느낄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처할까? 이목을 끌고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을 두 배로 늘리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고 종종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너무 애쓰는 사람은 필사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관심으로부터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 남들이 나를 끊임없이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관심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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