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 속 자기 조율하는 일본인...한국도 이제 생태 평형 이루어야

<피크 재팬>은 1991년 마이니치 신문기자로 일본에 체류한 이래로 27년간 일본을 관찰한 브래드 글로서먼이 쓴 책이다.

저자는 일본은 정점을 찍고 조용히 축소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보내면서 나름 정점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다. 사실, 일본만의 후퇴가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 인류는 생태평형을 이루기 위해 탈성장이 불가피하다.

'생태평형'을 이루는 지점에 대해서는 <성장의 한계> 등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의 정치는 이미 역동성을 상실했다. 자민당에서 처음으로 민주당으로 정권교체를 해 봤지만 철저하게 실패했고 자민당 독주는 더욱 공고해졌다.

아베 정권은 강력한 일본을 재건하려 몸부림쳤지만 일본 국민들 체념 정서를 넘지 못했고 이 정서는 점점 널리 확산되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삼중재난 이후 이런 정서는 더욱 뚜렷하다. 재정확장을 통한 경기부양은 임계점에 다다랐고, 코로나19 대응에도 실패했다.

상대 약점을 캐내고,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오징어게임 정치', 전문성 없는 정치인들이 돌아가며 각료를 맡는 '가라오케 민주주의' 등 정치에 문제가 많지만 유권자들은 이미 정치를 넘어선 듯하다. 좋게 말하면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성숙한 모습이고, 비판적으로 말하면 '반개혁'이다.

저자는 일본은 이제 정점에서 수축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있다고 평가한다. 일본은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한다. 미친 듯한 소비를 멈추고 공동체 사이의 만남과 연대를 중시하고, 경제성장보다는 좀 차분한 형식의 삶과 정신적 성숙을 갈망한다.

일본 젊은이도 현실에 안주하며 전례없이 행복해한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나쁘지 않다'는 분위기다. 일본사람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멈춤'을 말하며, 지구의 분명한 한계를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인들은 포스트 성장시대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이쓰키 히로유키는 '일본은 이제 새로운 다운사이징, 탈성장의 선봉에 선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한계 속에서 자기를 잘 조율하는 일본사람들 정체성은 탈성장 시대에 하나의 모델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은 이미 일본을 제치고 선진국 대열에 들었다 한다. 과연 그럴까? 한국 역시 분단, 신냉전 상황에서 정점을 찍었다는 전망도 많다. 앞으로 10년 후부터 '일하는 인구'는 2021년 대비 315만 명이 줄어든다. '피크 재팬'에 이어 '피크 코리아' 가설도 충분하다. '피크 한국'이라면 어떨까? 지금 한국은 심각한 불평등, 기후위기 무대책, 젠더분열, 땜질식 포퓰리즘과 팬덤정치로 분열되어 있다.

'피크 한국'은 가짜 역동성 안에서 '디지털 파시즘'으로 혐오와 분열만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SNS가 잘 발달된 한국이 민주주의를 넘어 파시즘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디지털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글로서먼의 분석은 우리에게 통찰을 준다. 인구지진, 저(탈)성장 등 일본은 어쨌든 우리의 선형모델이다. 일본은 100년 전 '번역청'을 만들어 동아시아에 새로운 서구근대 언어를 소개하고 동아시아 언어와 정신을 주도했다. 우리는 계속 성장할 수 없고, 지구의 얇은 생물막 안에서 생태평형을 이루어야 한다.

한국은 여전히 역사적 사명과 개발, 성장을 무의식 중에 강박으로 품고 있다. 이러니 기후위기, 에너지 전환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 어떤 탈성장, 어떤 '피크 코리아'의 길을 걸을 것인가? 이제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성숙'이다.
 

글_박기헌 (부산 박기헌 치과) 원장

*이 글은 경남 도민일보에 게재된 칼럼으로 저자와의 합의하에 게재됐습니다.

저작권자 © 덴탈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