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놀트 뵈클린 (1827-1901)

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öcklin)은 1827년 바젤에서 태어나 바젤 미술학교와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교육을 마친 후 두루 여행을 다니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님프랑스의 풍경화에 깊이 매료됐다.

뵈클린은 낭만적 상징주의자로 그의 그림에는 고대의 영웅들과 환상적인 신화 속 피조물들이 종종 등장한다. 1880년부터 1886년까지 뵈클린은 베네치아의 산 미켈레 공동묘지의 입지와 (열한 명의 자녀 중 하나였던 마리아가 묻혀 있는) 피렌체의 영국인 묘지의 건축 양식을 조합한 다섯 가지 버전의 <사자(死者)의 섬>을 그렸다. 1901년 이탈리아 피에솔레 근교 산 도메니코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자의 섬, 1883, 목판에 유채, 30×150cm, 베를린 구(舊) 국립 미술관
사자의 섬, 1883, 목판에 유채, 30×150cm, 베를린 구(舊) 국립 미술관

베를린의 <사자의 섬>은 총 다섯 가지 버전 중 네 번째 작품으로 제일 가볍고 덜 음산한 버전이다. ‘조용하고 고요한 공간’을 그리고자 했던 작가의 소망이 가장 잘 표현됐기도 하다.

뵈클린의 그림은 전반적으로 매우 교묘하게 한데 모아놓은 구성 요소들의 조합이면서 절대로 하나의 신빙성 있는 결과물로 통합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화가의 진정한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섬이 하나 있다. 하지만 그 일체성은 사이프러스 나무의 검은 수직 방향 붓질로 인해 드라마틱하게 둘로 찢기고 만다. 사이프러스 나무들의 덩어리진 암흑은 무한으로 행하는 중앙부(알 수 없는 죽음의 공간, 고요하고 대가 없는 심연)를 형성한다.

대지에서 바다로 피를 흘리는 암흑을 잠시나마 가둬 둘 수 있는 것은 섬의 어두운 내부로 통하는 및 개의 계단과 낮은 벽뿐이다. 전경에는 검은 옷을 입은 뱃사공이 우리를 물 건너편으로 건네준다. 뱃머리에는 하안 옷을 입은 죽음의 사자(死者)가 서서 섬을 향해 돌아보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최후의 여행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제 곧 육신을 떠나야 하는 영혼을 데리러 길을 떠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자의 섬, 1886, 캔버스에 유채, 80x150cm, 라이프치히 회화 예술 박물관
사자의 섬, 1886, 캔버스에 유채, 80x150cm, 라이프치히 회화 예술 박물관

# 독일 상징주의에서 이탈리아 ‘형이상회화파(Scuola Metafisica)까지
아르놀트 뵈클린은 태어난 곳은 스위스이지만 북유럽 낭만주의의 상상력에 기울었던 독일 상징주의 화가로 분류된다.

뵈클린은 자신과 스스로의 영향력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익히 잘 알고 있었던 매우 박식한 사람이었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방향에 때때로 동의를 표했던 것을 제외하면 그의 작품들은 따로 떨어진 밭에서의 쟁기질과도 같았다.

뵈클린은 막스 클링거나 안젤름 포이어바흐, 한스 폰 마레스 등과 같은 세대에 속해 있었으나 그의 예술은 초기부터 보다 지중해 세계의 공기를 머금고 있었다.

조르조 데 키리고, 신탁의 수수께끼, 1910, 캔버스에 유채, 42x61cm, 개인 소장
조르조 데 키리고, 신탁의 수수께끼, 1910, 캔버스에 유채, 42x61cm, 개인 소장

1908년 뮌헨에 머물고 있던 조르조 데 키리코가 뵈클린의 작품에 끌린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2년 후 형이상학 단계의 초기에 데 키리코는 형이상 미술의 이론적 형성과 형이상회화파의 결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 〈신탁의 수수께끼>에 <사자의 섬>에 등장하는 하얀 인물을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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