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인생에 있어 세가지 중요한 만남 중 세 번째 중요한 만남으로 스승과의 만남을 꼽았다. 누구나 잊지 못할 스승이있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셨던 전춘식 선생님은 잊을수 없는 분이다.

중학교 입학하기 전 공부하는 방법과 이제는 숙녀로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조언이 빼곡이 담긴 편지를 방학이면 보내 주셨던 선생님.
중학교 1학년때의 이정임 선생님, 허정숙 선생님 그리고 송영애 선생님. 함양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2학년때 전학을 오게돼 선생님들과의 인연은 편지로 이어졌다.

그 후 대학시절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을 밟고계셨던 독일 미학 전공의 장민한 선생님, 동양미학 조송식 선생님, 두 분으로 인해 미학을 공부할 수 있었고 당시 서울대 미학과 오병남 교수님의 명강의를 들을수 있도록 해 주신 분인생의 변곡점에서 새로운 길을 찾게 해 준 고마운 분이다.
캠퍼스를 오가는 시간동안 친구들보다도 오히려 교수님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냈던 시절. 시간 강사 설움의 보따리를 풀어 내실 정도로 가까운 두 분은 언제나 큰 동기부여가 됐다.

어릴적부터 꿈이 화가였기에 무조건 미대를 진학하고 싶었기에 선택했지만 3학년 전공과목 미학을 듣게 되면서 미학을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두 분 교수님은 아낌없이 도와주셨다. 또한 전공과목 이원일 교수님과 장준석 교수님도 잊을수 없는 분이다.

지난 과거들을 돌이켜보면 끊임없이 훌륭한 스승들의 조언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 스승들을 찾아뵙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고인이 되신 전춘식 선생님, 이원일 교수님, 전춘식 선생님은 몇 년전 연락이 닿았다. 한번 보고싶다는 말씀과 함께 찾아뵙겠다고

통화를 하고 전화번호를 저장한 후 찾아뵙지 못하고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문득 선생님이 떠올라 전화를 드렸는데 없는번호로 나왔다. 이미 고인이 되셨다는 말. 진작 찾아뵜어야 하는 아쉬움에 전화기를 떼지 못하고 하염없이 참회의 눈물을흘렀다. 이원일 교수님도 마찬가지.
우연히 교수님을 찾아 뵙고 싶어 검색을 했더니 이미 고인이 되셨다. 너무도 젊은 나이에 요절하셨다는 그것도 인사동 새벽거리에서. 술을 무척이나즐기셨고 사람을 좋아하셨던 교수님. 한국과 뉴욕을 오가면서 한국의 미술을 세계적으로 알리려 하셨던 교수님. 진작 찾아뵜더라면 하는 아쉬움.

치과계에서도 마찬가지. 이미 고인이 되신 이병태 선생님. 2년전 고인이 되시기 전 행사장에서 뵜을때 “치과에 놀러와”라고 하셨는데 찾아 뵙지도 못한 얼마 후 고인이 되셨다는 비보를 전해 들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가끔은 잊고 지냈던 사람들 그들을 한번쯤 찾아뵙는 게 필요하다.
그리워하면서도 한번 만나고는 못만나게 되기도 하고 평생을 못잊으면서도 아니만나고도 사는 연인이 있듯이 평생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찾아 뵙지 못하는 분이 있다면지금이라도 한번 찾아뵙는 건 어떨까?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김선영 기자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했으며 치과의료정책 전문가과정 1기를 수료했다. 현재는 아이키우기좋은나라운동본부 홍보실장 겸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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