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인상주의를 벗어나다

본 지는 앞으로 수 회에 걸쳐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인상주의편을 연재하려고 한다. 인상주의는 미학사에 있어 그 의의는 상당하다. 현대미술의 시초가 되는 인상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곧 현대미술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진중권의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을 찾아가길 바란다. (편집자주)

지난 호에 이어 ▶

 

드가는 인상주의 운동의 창립 멤버이면서도 자신을 사실주의자로 여겼다. 드로잉에 능한 그는 원래 역사화가가 되려고 했다. [운동하는 스파르타 젊은이들]을 보면 이 시기의 그의 화풍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화가로 인정받기 위해 살롱에도 꾸준히 출품을 했으나, 1864년 마네를 만나면서 예술적 경로를 결정적으로 바꾸게 된다.
마네의 사실주의에 영향을 받은 드가는 역사화의 기법에 당대의 제재를 결합시킨 ‘모던 라이프의 고전적 화가’가 되기로 한다. 최초의 인상주의전에 참여했지만 그 역시 마네처럼 인상주의자들과 자신의 거리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림 1)

(그림 1) 운동하는 스파르타 젊은이들. 에드가 드가. 1860년
(그림 1) 운동하는 스파르타 젊은이들. 에드가 드가. 1860년

사실 그는 ‘인상주의’ 라는 명칭 자체를 싫어했고,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인상주의의 관행을 조롱했으며, 인상주의와 거리가 먼 작가들은 전시회에 포함시키려다가 다른 멤버와 종종 갈등을 빚기도 했다. 사실 드가의 태도는 인상주의를 실어한 당시의 비평가들 못지않게 반(反)인상주의적이었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이 비교적 뚜렷한 윤곽을 가진 것은 물론 그가 가진 고전적 취향의 자취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인상주의자로서 특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려 한 것은 명백히 인상주의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명확한 윤곽을 강조하는 고전적 화풍으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장면을 포착한다는 것은 실은 불가능한 과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광경을 포착하려면 다른 인상주의자들처럼 즉각적이고 즉흥적인 필법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드가는 이 불가능한 과제를 주로 시각적 ‘기억’에 의존해 해결했다.

즉, 스쳐 지나가는 인상적 순간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머릿속에 담아두었다가 나중에 화폭 위에서 그 기억을 전사(轉寫)한 것이다. 부족한 기억을 돕기 위해 때로 글자 그대로 ‘사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의 작품이 회화라기보다는 마치 한 장의 스냅사진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순간적 인상을 명료한 윤곽으로 표현하는 것은 사진의 매체적 특성에 속한다.

드가의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역시 ‘시점’일 것이다. 다른 인상주의자들처럼 드가 역시 당시에 프랑스에 유입된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어, 카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의 ‘후지산 36경’ 중 하나인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는 서구 회화에서는 볼 수 없는 과감한 시점을 보여준다. 완전히 다른 전통에서 나온 이 색다른 시각이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그림 2)

(그림 2)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카츠시카 호쿠사이. 1830~1832년
(그림 2)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카츠시카 호쿠사이. 1830~1832년

드가의 무희 그림들은 뒤에서 훔쳐보거나 객석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등 하나같이 독특한 시점을 취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 화가의 시점이 아니라 카메라맨의 시점에 가깝다. 균형 잡힌 구도에 대한 고려 없이 공간의 대부분을 비워놓는 그림들은 우연히 찍은 스냅사진을 닮았다. (그림 3, 4, 5)

(그림 3) 무용 수업. 에드가 드가. 1874년 경
(그림 3) 무용 수업. 에드가 드가. 1874년 경

 

(그림 4) 꽃다발을 든 무용수. 에드가 드가. 1878년
(그림 4) 꽃다발을 든 무용수. 에드가 드가. 1878년

 

(그림 5) 무용학교. 에드가 드가. 1878~1879년
(그림 5) 무용학교. 에드가 드가. 1878~1879년

[무대 위에서의 발레 연습]이나 [발레 선생]과 같은 작품은 드가가 의식적으로 화면에 카메라의 효과를 도입하려 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 두 작품은 회색의 단색에 가깝다. 인상주의 회화의 생명은 역시 외광의 색채 효과에 있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색채 자제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드가는 애초에 여타의 인상주의자들과는 다른 목표를 지향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저 두 작품의 단색은 아직 흑백이던 당시 사진의 효과와 관련이 있다. [무대 위에서의 발레 연습]은 영국의 어느 주간지에 싣기 위해 인쇄에 적합하도록 일부러 색채를 없앤 것이라고 한다. [발레 선생]의 경우에는 마치 현상하지 않은 네거티브필름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림 6, 7)

(그림 6) 무대 위에서의 발레 연습. 에드가 드가. 1874년
(그림 6) 무대 위에서의 발레 연습. 에드가 드가. 1874년

 

(그림 7) 발레 선생. 에드가 드가. 1876년
(그림 7) 발레 선생. 에드가 드가. 1876년

사진은 사실 인상주의와 서로 모순되기도 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단 사진은 대상의 형태를 정밀하게 묘사할 의무에서 화가들을 해방시켜주었다. 인상주의자들이 형태의 정확성을 포기한 채 빛이 만들어내는 색채 효과에 주력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사진이 그동안 회화가 해온 그 과제를 넘겨받은 덕이었다.

인상주의자들은 기억을 돕는 자료로 종종 사진을 사용했다. 사진을 사용하는 데 부정적이던 모네조차도 실은 지베르니에서 루앙대성당을 그릴 때 사진을 참조했다고 한다.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베냐민은 얼룩덜룩한 색점들로 이어진 인상주의 회화가 대도시인의 지각 방식을 회화적으로 구현한 것이라 주장한 바 있다.

드가 역시 사진을 즐겨 활용했다. 실내에서 기억에 의존해 작업을 하는 한 대상의 형태를 기억하는 데에 사진은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가에게 사진은 그저 사물의 형태를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사진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흘러가는 순간을 영원히 응고시키는 능력이었다.

“순간아 멈추어라. 너는 너무나 아름답도다.”라는 [파우스트]의 대사처럼 드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그렇게 응고한 아름다운 순간을 본다. 발터 베냐민은 사진술이 현대인의 지각 방식을 바꾸어놓았다고 말한다. 육안에서 렌즈의 지각으로. 드가는 그렇게 ‘카메라’의 등장으로 우니 눈에 일어난 지각의 변화를 회화로 구현한 최초의 작가였다.

 

다음 호에 계속 ▶

 

목차
0. 고전미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고전미술의 붕괴
2. 유럽의 시대정신
3. 혁신을 위해 과거로
4.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5. 인상주의의 탄생
6. 순수 인상주의자들
7. 인상주의를 벗어나다
8. 색채와 공간의 분할
9. 현대미술을 예고하다
10. 지각에서 정신으로
11.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의 가교
12. 감각을 실현하라
13. 자연미에서 인공미로
14. 모더니즘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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