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받은 이 상은 치과계가 받은 상입니다.”
지난 6월 신덕재(중앙치과) 박사는 조선일보 청룡봉사상을 수상했다. 남북하나재단이 평생 봉사와 기부의 삶으로 살아온 그를 추천했던 것이다.
신덕재(중앙치과) 원장은 봉사를 많이 해서 받았다기보다 치과계에서 사회적으로 타인을 도우는 사람이 많음을 알리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겸손의 소감을 밝혔다. 열린치과봉사회의 고문이기도 한 신 박사의 봉사의 시작은 아주 먼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 박사도 그렇게 넉넉한 형편에서 자란 것이 아니기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에 대해 누구보다 더 절실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1974년도에 푸른얼이라는 연합봉사단체를 만들었다. 그 당시 무의촌을 다니면서 그때부터 그전에 어렵게 학교를 다녔던 자신을 돌아보면서 치과의사가 되면 과거의 어려운 사정을 생각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푸른얼을 만들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1999년에 지금의 열린치과봉사회를 만들었다.
그때는 IMF이후에 경제사정이 악화된 노숙자에서 시작해 탈북자에게까지 진료를 하게 되고 무의탁노인과 농어촌 진료소에도 가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현재는 해외진료까지 여섯군데 진행하고 있다.
신 박사는 봉사진료뿐만 아니라 기부도 많이 해 왔다. 그의 이러한 기부는 C 채널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기부는 열린치과봉사회가 처음 설립될 무렵 기금이 없어 운영하기도 빠듯했다. 그렇기에 열린치과봉사회의 초기 운영기금을 기부했다. 그 이후에는 후배양성을 위해 장학기금을 냈다. 해외진료를 위해 총 2억원을 기부했다.
탈북자들의 새터인 하나원에서는 지난 15년간 진료를 해왔다. 하나원에서 나온 새터민들이 치과 치료받고 싶어도 비용이 많이 들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됐다. 그래서 그러한 새터민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남북하나재단에 지정기부를 했다.
보철할 사람을 열린치과봉사회로 보내면 열린치과봉사회 회원들이 치료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환자들은 열린치과봉사회 회원들의 치과를 찾게 되고 열린치과회원들은 재능기부를 하게 됐다. 이 때 신 박사는 1억원을 기부했다.
신 박사는 치문회 회원이기도 하다. 시간 날 때면 틈틈이 글을 쓴다. 지난 1995년에 신인상을 받았을 정도로 이미 중견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나의 장르는 소설이면서 수필을 씁니다. 글은 사실을 사실답게 쓴 허구죠. 그렇다보니 사실을 쓰려면 정직해야 합니다.”
신 박사는 글은 자기마음의 표현이므로 정직한 창작물이라고 말한다. 글은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기가 주장하고 싶은 것을 표현해서 독자가 공감을 할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 박사는 탈고 후에는 언제나 아쉬움은 남는다고 한다. 이순(耳順)의 나이지만 글을 쓰면서 하나를 완성했다는 만족감은 다시 그를 펜을 들게 한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치과의사들도 자기의 영역을 넓혀 가는 게 좋으며 자기개발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글은 막연하게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습니다. 지금 그 꿈을 이루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에게도 아직 남은 꿈이 있었다. 문재인 정권에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북한 진료를 하고 싶다고 했다. 황해도 옹진이 고향인 신 박사는 고향인 북한에 대한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정말 못살고 힘든 곳이 바로 북한이라고 한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본 북한의 모습도 2002년도에 신 박사가 평양을 방문하고 16년이 흐른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지금도 우리의 1970년대의 상황과 같다는 것이다.
“평양거리는 한산하고 차가웠습니다.”
신 박사는 그렇게 차가운 북한에 따뜻함을 전하러 다시 가고 싶다고 했다. 그곳에서 바로 치과진료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북한진료를 하려면 먼저 인프라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 전기와 물 그리고 치료가능한 교육도 필요하다. 그러한 인프라가 형성이 되도록 준비도 필요하다고 했다.
만약에 북한에 간다면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있고 실질적인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진료를 하고 싶다고 했다. 북한이 고향인 신 박사에게선 고향에 대한 향수가 묻어났다. 그렇기에 그 차가운 평양에 따뜻한 진료봉사를 하고 싶은 꿈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는 현재 치과계가 어렵고 또한 앞으로도 더 어려울 것이라며 그러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제의 적도 없고 오늘의 적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거창한 조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깊은 메세지가 있었다. 너무 야합하지 말고 적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또한 치과의사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다시 젊은 치과의사로 돌아간다 해도 저는 평범한 치과의사로 살 것입니다”
미소를 띄우며 건네는 신 박사의 얼굴에는 젊은 청년의 꿈이 가득 베어 나왔다.
김선영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