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역사상 인상주의 역할은 상당하다. 인본주의를 모토로한 르네상스의 출현으로 미술에 있어서의 혁명이 일어났다. 이러한 사상적인 측면과 과학의 발달 곧 카메라의 발명은 더 이상 화가들이 초상화만을 그리는 직업이 아닌 화가의 눈으로 보는 세계를 그림으로 그리게 되는 시초가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상주의는 화가의 눈에 보이는 인상을 그린다의 인상을 그대로 인상주의라는 사조가 출현하게 된다.

이처럼 인상주의의 출현은 화가의 시각을 중요시하게 되고 이로 인해 현대미술의 시초를 닦게 된다. 그 중심에 있는 세잔느의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곧 근대미술에 서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계보를 알게 되는 큰 흐름이 된다.

이에 본지는 세잔느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했던 마이어 샤피로의 폴 세잔느를 인용하여 독자들의 미술세계를 넓히고자 한다. 읽어가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점점 더 이해가 깊어지는 순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림으로써 감성의 세계에도 깊이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주)

 

지난 호에 이어 ▶

 

1860년대 말경에 이미 세심하게 고려되고 미묘한 조화를 보여주는 회화에 대한 욕구가 세잔느 본성의 일부가 되었다. 후기의 정물화에서 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이 화폭에서도 발견된다. (그림 1)

▲ 검은 시계. 세잔느. 1870년 경. 53×72cm.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컬렉션

젊은 세잔느가 명도와 색상이 매우 유사한 색조들을 교묘하게 처리한 수법을 넓은 영역들과 선들에서 보이는 대담한 대비수법과 함께 구사한 방식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

주조색인 흰색, 회색, 검정색에 선명한 노란색과 빨간색이 가미된 점과 웅대하고 활기찬 터치는 마네를 연상시킨다. 초콜릿 컵과 받침 접시, 레몬과 금박도금시계 같은 요소들에 나타난 정물의 개념 또한 마네와 같다.

그렇지만 사물들의 풍부함과 어떤 곳에서는 두텁고 거칠고 어떤 곳에서는 얇고 투명한 붓질의 다양함, 그리고 무엇보다 기괴한 조개를 그려 넣은 것 등은 또 다른 기질을 반영한다.

마네와 마찬가지로 세잔느는 동일한 빛을 받는 각기 다른 여러 조용한 대상들의 연대 속에 잠재된 대비와 조화를 관조 하게 하는 소재로서 정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마네는 불가사의한 확실한 붓질로 대상들의 질감과 빛의 정수들을 추출해냄으로써 대상들의 특징을 살렸다.

이에 반해 더욱 근엄한 관조적 정신의 소유자인 세잔느는 대상들을 질서와 자유, 규칙성과 우연성이 철저히 가시화될 수 있는 완벽한 세계의 모델, 즉 자연 및 인간과 비슷한 것으로서 연구했다. 하지만 그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소재들을 선택함에 있어 감정이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바늘 없는 시계와 불그스름한 입을 벌린 거대한 바다조개 배후에 모호한 공상이 있음을 감지한다. 20년 후에 그는 과일 사이에 큐피드 석고상을 놓게 되고 그 이후에는 인간의 해골을 놓게 된다.

조개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 가장 풍부하게 채색되고 유기적으로 보이는 대상이며, 주변의 엄격한 선들에 비해 두드러진다.

조개의 위쪽 가장에는 바로크적인 과장이 있어서, 그 영향은 뒤편 부채꼴 무늬의 수직 띠에 그리고 유리꽃병의 대조적인 지그재그 모양의 주둥이는 물론 큰 물결을 이루며 구겨져 있는 오른쪽의 탁자보에 나타나고 있다.

이 작은 그림의 아름다움은 특히 명암의 구사에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빛과 그림자로서의 아니라, 가장 미묘한 차갑고 따뜻한 변화를 보여주며 흰색과 검정색의 양 극단으로 집중되는 색조들의 조화로서 나타난다. 중간 명도의 영역은 덜 풍부하다.

명암의 정도에 따라 몇몇 곡선에 의해 완화되는 수직선과 수평선의 대립 정도가 달라진다. 이 곧은 형태들의 다양한 길이와 간격 및 색채들은 섬세하게 파악되어 있다.

리듬감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곳은 탁자보가 점차 넓게 주름 잡히면서 명암대비를 변화시키는 곳이다. 탁자보의 흰색은 그 위의 대상들에서 변화를 이루어 채택되어 있고 탁자보의 어두운 강조점들도 그 대상들과 배경에서 다시 나타난다.

각각의 정물들은 훌륭하게 그려져 있어 색채, 빛, 형태 그리고 화가의 터치 등으로 된 독특한 작은 세계로서 세밀하게 음미할 만하다.

 

1870년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이 일어났을 때 세잔느는 군복무를 기피했다. 그는 루이 나폴레옹과 제2 제정을 위해 기꺼이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처음에는 프로방스의 가족 영지에, 나중에는 마르세유 근방에 있는 지중해 연안의 작은 수공업 도시 에스타크에 숨었다. (그림 2)

▲ 눈 녹는 에스타크. 세잔느. 1870년 경. 72×91cm. 스위스 뷔를레 컬렉션

거기서 머무는 동안 그는 당대의 프랑스 미술풍의 면모보다는 20세기 회화에 가까운 면모를 더 많이 보여주는 이 독창적인 겨울 풍경화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십여 년 후에 나온 고흐의 작품에서처럼, 강렬한 감정에 의해 형성된 공간을 보여주는 괄목할 만한 예이다.

전경은 가파른 산비탈인데, 그것은 왼편으로부터 오른편의 기울어진 붉은 지붕으로 쏟아져 내린 눈사태로써 화면을 대각선으로 나누어, 이미지에 박진감 넘치는 힘을 준다.

관찰자가 딛고 설만한 발판이라곤 없으며, 이 불안정한 땅 위의 나무들은 구부러진 줄기를 겨우 지탱하고 있다.

치솟는 수렴선들로써 급히 후퇴하는 중경의 벌판과 거대 하게 수평으로 감돌면서 걸려 있는 잿빛 구름 등은 아래로 쏠리는 그 언덕의 경사와 대조된다.

눈사태로 시달리는 왼편 검은 나무의 어두운 잎으로부터 나무들의 또 다른 운동감이 시작되어, 그것이 언덕마루 위로 내려오면서 강도가 약해지는 단일한 리듬으로 먼 지평선과 섞이게 된다. 깊이를 나타내기 위해 단축된 사선들 그림 속의 다른 사선들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꾸불꾸불한 대지의 윤곽은 커다란 나무줄기의 형태와 오른쪽에 있는 지붕과 길들이 이루는 놀라운 지그재그 형태에서 반복된다.

세잔느는 이러한 병치를 통해 서로 다른 깊이의 평면들 속에 있는 대립적 움직임을 일관된 형식으로 통일시킨다. 색채 또한 가까운 것과 먼 것을 규합시키는 강력한 힘이다. 이는 붉은 지붕들의 군집에서 명백하다.

그렇지만 세잔느는 차갑게 번쩍이는 지평선의 빛을 통해 먼 하늘과 전역을 통합시키기도 한다. 인접한 실루엣과 어울리도록 교묘히 구사된 흰색 터치들은 전체 장면의 시점에 해당하는 언덕 꼭대기 너머에 집중되어 있는 작은 지그재그의 후광을 형성한다.

세잔느는 공간 속의 극적인 요소, 즉 커다란 운동과 퉁명스러운 대립의 효과를 발견했다. 이 그림에 적용된 원근법은 축소된 사물에 나타나는 선들의 재빠른 흐름과 변화의 신속한 리듬을 통해 저항할 수 없는 급박성을 갖는다.

색채와 붓터치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광포한 풍경을 나타내도록 구사되어 있다. 거무스름한 색조가 풍경 전체에 스며 있으며, 군데군데 순색조로 그려진 눈조차 검정색의 동반자처럼 보인다.

이 그림은 압도적이면서 거의 단조로운 격정을 갖고서 강한 대조로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섬세한 색조를 띠고 있다.

눈의 다채로운 흰색조와 많은 회색조들은 물론 빨간색 지붕들 사이에 위치한 중경의 따뜻한 색조들이 바로 그러하다. 차가운 검정색, 차가운 흰색 그리고 회색 취향이 세잔느의 분위기에는 자연스러운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취향은 색조와 시각의 직접성이 감정을 나타내는데 사용되면서 이상하게 변형되어 있는 우아하고도 냉담한 마네의 미술을 전제하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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