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역사상 인상주의 역할은 상당하다. 인본주의를 모토로한 르네상스의 출현으로 미술에 있어서의 혁명이 일어났다. 이러한 사상적인 측면과 과학의 발달 곧 카메라의 발명은 더 이상 화가들이 초상화만을 그리는 직업이 아닌 화가의 눈으로 보는 세계를 그림으로 그리게 되는 시초가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상주의는 화가의 눈에 보이는 인상을 그린다의 인상을 그대로 인상주의라는 사조가 출현하게 된다.

이처럼 인상주의의 출현은 화가의 시각을 중요시하게 되고 이로 인해 현대미술의 시초를 닦게 된다. 그 중심에 있는 세잔느의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곧 근대미술에서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계보를 알게 되는 큰 흐름이 된다.

이에 본지는 세잔느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했던 마이어 샤피로의 폴 세잔느를 인용하여 독자들의 미술세계를 넓히고자 한다. 읽어가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점점 더 이해가 깊어지는 순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림으로써 감성의 세계에도 깊이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주)

 

지난 호에 이어 ▶

 

오베르는 파리 근교의 마을로 인상파 화가들이 가끔 찾아와 작업을 하던 곳이다. 여기서 살았던 가쉐 박사는 아마추어 화가이자 피사로와 세잔느의 친구인데, 그는 바로 15년쯤 후에 자포자기한 반 고흐를 돌봐준 장본인이다. (그림 1)

▲ 그림 1) 오베르의 풍경. 세잔느. 1874년 경. 64×79cm. 시카고 미술연구소

풍경은 사방으로 거의 고르게 펼쳐져 있어서, 높은 지평선 아래에는 뚜렷한 길도 없고 중심 되는 선들도 없다.

위에서 내려다본 이 풍경은 집, 나무, 들판이 점점이 들어차 있어서 부드러운 평원에 자리잡은 이 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탁 트이게 펼쳐져 있는 이 세계는 커다란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거기에는 많은 부분에 밝은 색채나 대조가 나타나 있다. 이것은 돌릴 때마다 다양한 그림이 나오지만 그 모든 그림들에 반짝이는 요소들과 분류되지 않고 정돈되지 않은 특성들이 동일하게 내재해 있는 하나의 만화경이다.

깊은 느낌은 없으나 상당한 매력과 평온감을 지닌 주조색은 밝은 녹색으로 무한하고 매우 미묘하며 또한 차가운 느낌을 자아낸다. 파랑, 빨강 그리고 흰색 등 보다 강렬한 터치들은 작게 흩어져 있다. 이 중에는 특히 흰색이 많아서 밝은 색채들과 때때로 미세한 대비를 이루어 화면 전체를 밝고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파노라마와 같은 깊이는 수렴하는 선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점점 작아지면서 후퇴하고 있는 중첩된 부분들로써 형성된다. 색조들에는 명확하거나 뚜렷한 질서가 없다. 지평선 부근에는 짙은 녹색들이 있고, 가운데 공간에는 날카로운 빨간색들이 있으며 전경과 원경에는 같은 색들이 부드럽게 나타나 있다.

멀고 가까운 공간 속에 있는 일련의 녹색들 간의 차이는 극히 세련되게 구사되어 있다. 색채의 강도와 이웃하는 색조간의 대비 정도는 전경과 지평선 사이에 있는 미세한 간격들에 따라 변화한다. 전경의 파란 지붕들은 약화된 빨간 색조와 짝을 이루고, 중경의 밝은 빨간색들은 탁한 청색이나 녹색들과 짝을 이룬다.

하지만 대비의 폭은 그림 깊숙이 전진해 나감에 따라 어떤 곳에서는 현저하게 변화한다. 전경 오른쪽에서의 파랑과 노랑의 대비라든가 중경에서의 빨강과 녹색의 대비, 지평선에서의 하늘색과 녹색의 대비가 그러하다.

두텁게 칠해진 색점들 속에서, 우리는 전경과 중경의 상대적인 혼란상태로부터 원경의 명확함에로 나아간다. 화면은 구성된 것이라기보다는 여러 조각들이 뒤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빛과 색채의 매력은 세잔느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견고성과 집중성을 희생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그것은 주로 지붕과 굴뚝에 있는 빨간색과 파란색의 확실한 붓질에서 나타나는데, 그 대부분은 수직적이고 수평적이어서 구축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야유회의 일상적인 의미가 여기서는 생소하고 꿈결 같은 분위기로 뒤덮여 있다. 풀밭 위에 펼쳐진 식탁보 위에는 단지 오렌지 두 개 밖에 없다. 이것들은 인물들에게 있어 뚜렷한 명상의 대상이다. (그림 2)

▲ 그림 2) 야유회. 세잔느. 1869년 경. 59×80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그 위에는 몸을 구부린 키가 큰 한 여인이 금발의 머리를 풀어헤치고 배회하고 있다. 내민 손에 세 번째의 오렌지를 들고 있는 이 무녀는 성찬식을 수행하고 있거나 주문을 외우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전경에서 프록코트를 입고 동작을 취하고 있는 남자를 응시한다. 그는 일찍 머리가 벗겨진 젊은 세잔느를 닮았다.

멀리에는 경건하고 엄격한 인물이 호위병 혹은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사제같이 팔짱을 끼고 서서, 파이프 담배를 피워 물고 있다. 왼편에는 한 쌍의 남녀가 세잔느와 무녀가 입은 것과 같은 옷을 입은 채, 팔짱을 끼고 어두운 숲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이 그림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 그려진 뒤 그리 오래지 않아서 야유회가 근대적인 목가의 한 유형으로 즐겨 다뤄지던 시절에 그려졌는데, 세잔느가 그의 동시대인들이나 심지어 그와 친밀한 사람들의 기분과 얼마나 거리가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한 척도가 된다.

번뇌가 가득한 정신의 소유자인 그는 친구들의 자유로움과 즐거움에 쉽게 끼어들지 못한 채, 이 파티에서 외톨이로서 여자도 없고 와이셔츠 차림의 남자들 가운데 유독 그만이 정장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상황의 천진스러움에 자신을 내맡기지 못한다. 이 그림은 신비와 의혹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 세번째의 과일도 의문의 여지를 남겨 놓는다.

이같이 난망한 공상에 있어서 세잔느는 물의를 일으킨 마네의 그림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마네의 그림에는 무도회의 예복을 입은 두 남자가 한 나체 여인과 함께 앉아있다. (그림 3)

▲ 그림 3) 풀밭 위의 점심. 마네. 1863년 경. 208×264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마네는 벌거벗은 사람과 옷 입은 사람을 나란히 그려놓음으로써 야유회의 배후에 있는 본능을 너무나도 직접적이고 냉정하게 지적했다.

세잔느는 야유회라는 테마에서 인상주의자들이 그 테마의 경박한 이미지들을 통해 무시해 버렸던 감추어진 개인적 의미들을 되살렸다. 개와 오른쪽 구석에 있는 파라솔과 모자는 아마도 그 심층적인 의미에 속할 것이다.

세잔느의 초기 회화들은 흔히 미숙한 스케치라고 치부되곤 하는데, 그 작품들이 너무 충동적이어서 그의 후기 작품들에게 볼 수 있는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세잔느가 형식에 대한 비판적 고려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돌연하고 신경질적인 화면처리와 세부의 거침이 화폭의 힘을 가리지는 않는다.

흰 식탁보 주변에 인물들을 집중시킨 점이나 어두운 숲을 배경으로 묘사한 키 큰 여인의 윤곽처리, 그리고 오른쪽의 가지러한 나뭇가지들은 놀라운 효과를 자아낸다.

젊은 세잔느는 인물의 배치방법을 날카롭게 간파했고, 자신이 의도하는 긴장된 표현을 위해 색채를 올바르게 연출하고 배치하는 방법도 찾아냈다.

그의 후기 미술과 관련하여 흥미 있는 점은 수평적인 구름과 수풀 가장자리의 연속성이다. 우리는 이러한 처리를 식탁보의 가장자리와 무녀의 치맛단에서 다시 본다.

세월이 색채를 어둡게 만들어서 넓은 영역에 걸쳐 색감이 가라앉아 버렸다. 그러나 따뜻하고 차가운 색조들을 어둠침침하게 중성화시켜 사용한 것은 자연적이며 섬세하기까지 한 세잔느의 조화에 대한 감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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