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역사상 인상주의 역할은 상당하다. 인본주의를 모토로한 르네상스의 출현으로 미술에 있어서의 혁명이 일어났다. 이러한 사상적인 측면과 과학의 발달 곧 카메라의 발명은 더 이상 화가들이 초상화만을 그리는 직업이 아닌 화가의 눈으로 보는 세계를 그림으로 그리게 되는 시초가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상주의는 화가의 눈에 보이는 인상을 그린다의 인상을 그대로 인상주의라는 사조가 출현하게 된다.

이처럼 인상주의의 출현은 화가의 시각을 중요시하게 되고 이로 인해 현대미술의 시초를 닦게 된다. 그 중심에 있는 세잔느의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곧 근대미술에서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계보를 알게 되는 큰 흐름이 된다.

이에 본지는 세잔느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했던 마이어 샤피로의 폴 세잔느를 인용하여 독자들의 미술세계를 넓히고자 한다. 읽어가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점점 더 이해가 깊어지는 순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감성의 세계에도 깊이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주)

 

지난 호에 이어 ▶

 

빅토르 쇼케는 인상파 화가들의 친구였는데 당대 미술에 대한 순수한 헌신으로 말미암아 역사적 인물이 된 사람이다.

그는 하급 공무원으로서 큰 재산도 없었지만 르노아르와 세잔느 작품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들이 비평가와 대중들로부터 조소받고 있던 시절에 그 작품들을 수집했다. 이 두 화가는 여러 차례 그의 초상을 그린 바 있다.

르노아르의 초상에서는 쇼케는 아주 편안한 모습에 부드럽고 수동적인 성품으로 나타나 있으며 감상자를 점잖게 바라보고 있다.

▲ (그림 1) 빅토르 쇼케의 초상. 세잔느. 1875년 경. 36×45cm. 개인 소장

세잔느의 그림에서도 그런 특징들이 르노아르 못지않게 예민하게 나타나 있긴 하지만, 머리를 날카롭게 옆으로 돌려놓고 높이 치솟은 머리카락에서 절정을 이루게 한 점에서 나폴레옹 시대 낭만주의 아류의 초상화를 생각나게 하는 장엄함이 강조되고 있다.

머리는 기묘한 원근법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마치 얼굴을 홀쭉하게 하고 측면을 날카롭게 단축시키는 유리잔을 통해 본 모습 같다.

이목구비는 극도로 생략되어 있고, 눈동자를 돌려 시선의 힘을 감쇄시킴으로써 또한 얼굴에 수직성이 느껴지는데, 이것은 윗눈썹의 각도와 또 그와 비슷하게 열려있는 옷깃으로 인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세잔느는 새로운 풍경화들과 마찬가지로 색채의 찬란함과 신선함에 있어 진일보한 것이다. 외광파적인 색조들은 이전의 초상화에서 보이던 검정색과 중성화된 음영들을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풍경화에서처럼 우리는 모든 곳에서 기운차고 솔직한 붓의 움직임을 추적하게 되는데, 그것은 빛의 명멸과 방향감 그리고 색조에 있어 풍부한, 두텁고 신선한 물감 자국을 만들어낸다. 붓질은 전반적으로 강하고 곧지만, 각 부분에는 분명한 운동감이 있다.

미묘한 모델링을 가능케 할 만큼 작은 동시에, 완전히 전체의 구성적 요소로 보일 만큼 큰 붓질은 그림 전체와 멋지게 조화를 이룬다.

이리 저리 날뛰듯 혼돈스러운 몇몇 작은 빨간색 터치들은 코와 볼에 생기를 주며, 머리카락과 턱수염의 가장자리에서 볼 수 있는 보다 어두운 색의 붓질들은 흥미 있고 분방한 곡선의 리듬을 자아낸다.

그것은 모두 뚜렷한 밑그림이나 지침이 되는 구조적인 선도 없이 구성되었기 때문에 마치 모델이 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직접적 반응으로서 붓질이 저절로 이루어진 듯하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한 것은 담대한 효과와 공간을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는 점이다.

▲ (그림 2) 이탈리아 소녀. 세잔느. 1896년 경. 72×91cm. 개인 소장

세잔느는 후기 정물화에서 사용했던 여러 가지 요소들(장식적인 주름, 위로 비스듬히 올라간 탁자, 여러 가지 색조의 넓은 흰색 영역)을 사용한다. 그렇지만 그 효과는 아주 다르다.

여기서는 단순함과 풍부함, 안정성과 불안정성간의 보다 균형적인 유희를 보여준다. 전체가 르네상스 시기의 위대한 베네치아 화파의 초상화들을 상기시키는 풍으로 처리되어 있다.

형태들은 기가 막히게 확고하고 잘 규정되어 있다. 구부리고 있는 인물은 그녀의 공간을 당당하게 채우고 있다. 설득력 있게 구성된 이 작품은 꽉 차고 분명하며, 부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캔버스 표면과도 어울린다.

기울어진 상체는 치마와 옷주름에서 보이는 사각형들과 대비된다. 그렇지만 수직적인 것과 수평적인 것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간단한 부분들(팔찌와 벽)이나 보다 복잡한 선들 중의 일부에서만 눈에 띄다.

가장 안정된 부분은 비건축적인 성질을 지닌 선들과 점들(주름 잡힌 탁자보에서 사선으로 교차되거나 구부러져서 치마로 모아지는_로 덮여 있는데, 이것은 세잔느 후기 미술의 전형적인 구도로서 이것에 의해 구성의 엄격함이 누그러지고 대립적인 성질들이 상호 결합된다.

색채는 풍부하고 장중하며 강하다. 넓은 부분의 단순성은 거기에 할당되어 있는 다양한 색채관계들을 처음에는 감추어 버린다. 가령, 치마의 암청색은 각각의 넓은 색채영역들과 색다른 대조를 이룬다.

낮은 명도의 어두운 치마의 색채는 흰색과 대립되며, 그 차가움은 그와 보색관계에 있는 숄과 얼굴의 노란색 및 오렌지색의 따뜻함과 대립된다. 그리고 치마의 획일성과 균일성은 탁자보의 알록달록한 색채와 대립되며 그 순수성은 혼합되고 중성화된 벽의 갈색과 대립된다.

동시에 치마는 대립되는 이 모든 영역들과 조화를 이루는데, 거기에 나타나 있는 수렴하는 선들은 청색과 회색의 색조를 띠고 흰 소매에서 다시 나타난다.

암청색 선들은 또한 얼굴과 이목구비와 오른팔의 윤곽을 나타내며 숄에도 파란색, 회색, 검정색이 뒤섞여 있다.

치마는 또한 벽의 선들과 왼쪽의 징두리벽판에 의해서 그리고 어두운 색조를 통해서 흐린 녹색조와 자주색조가 가미된 갈색 바탕의 벽과 통합되어 있다.

즉 치마에서 자주색 징두리 벽판을 거쳐 위쪽 벽으로의 진행이 있다. 마지막으로 치마의 푸른 영역은 유사한 위치와 형태 그리고 비슷한 선들로써 탁자보와 연관된다. 탁자보의 빨간색과 녹색 터치들은 얼굴을 그 주름장식과 연길시킨다.

세잔느가 다양하게 기울어진 커다란 덩어리들을 수평면 없이 하나의 깊이 속에 세련되게 서로 연관지운 점 역시 아름답다.

즉, 화면과 벽면 사이에 연속적으로 중첩되어 있는 기울어진 평면들은 매우 절묘한 처리이다. 위쪽 벽에서 머리와 숄을 지나 오른편에 있는 옷주름에까지 눈에 띄지 않는 띠로써 수직적인 혹인 수직에 가까운 방향을 나타낸 것 또한 미묘하다.

마지막으로 붓질로 강하게 강조한 머리의 멋진 처리에 주목해보면 두텁게 칠한, 매우 사려 깊고 정확한 파란 선들로써 윤곽에 조각적인 견고성을 부여하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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