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서 있는 바로 그곳이 진리이다.’

얼마나 자신감 있는 말이던가? 오래전에 치과계에 인용 글을 올린바 있었는데 다시금 되새겨본다.

엊그제 공보의 중앙직무교육을 마치고 나오면서 후배들에게 깜빡했던 말이다. 꼭 말해 주고 싶었던 말인데 아쉬움이 커서 글로 대신한다.

국시를 마치고 합격소식에 이어 졸업식으로 이어지는 삶은 선배나 후배들이나 똑같을 것이다. 그리고 공보의로 이어진다. 이때 대한민국 남성은 치과의사라는 면허 때문에 군복무를 공보의 복무로 겨를 없이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인생의 황금시절에 들어간 3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보건소에 일치시킨다.

아직까지는 후배들 가운데 누구도 이것이 싫다고 뿌리치고 집단소송이나 탈출을 시도한 후배는 없었다.

마치 졸업 후 당연히 정해진 수순이라는 집단 최면에 걸리거나 혹은 선배들의 환상 같은 공보의 시절담에 자신도 경험하고 싶어서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공보의를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입장은 못 되지만 아직까지 이를 불평하거나 시간낭비라고 말한 치과의사를 만나 보지 못했다.

어쩌면 이만큼 치과의사들은 스스로 자신의 위치나 업무를 공공의 신분이라는 점에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선진국에 다다른 대한민국에 아직도 도서벽지, 농어촌, 접경지역, 노동복합지역 등의 의료시설이 부족하고 곳곳에 무치의 촌이 있으며 공보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새삼 자괴감으로 다가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보의 기간은 자신의 연속된 공부라는 긴 여정과 쌓였던 스트레스에서 휴식기를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들에게 다시금 공부를 강요하고야 말았다.

공중구강보건사업을 실행함에 있어서 조사와 연구사업을 강요했고 교육사업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들은 강의를 들으며 나의 설명을 얼마나 듣기 싫었을까? 더구나 지금 본 지면을 통하여 다시금 그들에게 마음가짐과 정신교육을 시키고 있으니 한심하지 않는가? ‘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종친 수업시간을 한참 지나 이렇게 거품 물고 있으니 말이다.

큰 딸이 이번에 대학을 진학했다. 아빠의 병원을 물려주기 위해서 꼭 의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의과대학을 희망했고 강요했다.

딸이 선택한 지금의 길이 10여년 뒤에 후회할까봐 혹은 아빠의 경험상 혹은 체면을 언급하며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딸의 선택이 후회될 것이라고 무던히 설득했지만, 결국 의대가 아닌 자신이 원했던 전공을 택했다.

한동안 집안의 분위기는 삭막했고 대화가 단절됐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딸의 선택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래 아이의 선택이 맞을 수 있다. 아니 맞아야 한다.’

그래서 올해 공보의들은 더욱 부러운 후배들이거나 제자들이다. 나는 이제 차선책을 찾아야 했다.

후배들은 말없이 받아들이고 있었고 3년을 디자인했을 것이다.

인생의 3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간 이다. 욕심 없이 보내기엔 너무도 길고, 자신을 새로이 만들 수 있는 긴 시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지금 이 자리가 부모님 선택이든 자신의 선택이든 어쨌든 중요한 것은 지금과 미래다. 바로 그 답이 ‘隨處作主 立處皆眞’ 이다.

후배들은 어디서든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곳이 진리가 되어야 한다. 선배들은 그들이 성장할 터전을 만들어주고 기회를 주며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나도 딸에게 더 늦기 전에 화해와 함께 이 말을 전해야겠다.

 

다음 호에 계속 ▶

 

 

박용덕 교수는 경희대학교 치의학박사를 거쳐 경희대학교 교수와 식약처중앙약사심의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조선대학교치과대학 부속병원 예방치과에 재직 중이다. 대한구강보건협회부회장과 법원전문심리위원, 신의료기술평가위원, 보건복지인력개발원 해외환자 유치프로그램자문위원장, 대한미래융합학회초대회장, JTBC 공정방송위원회, 심평원 의료행위평가위원과 제14대 아시아예방치과학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덴탈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