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의료인의 윤리: 의료윤리, 생명윤리, 전문직 윤리

우리나라에는 의료와 관계된 윤리 문제를 다루는 학회가 둘이나 있다. 하나는 한국의료윤리교육학회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생명 윤리학회이다.
전자는 주로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현실적 문제를 다루고, 후자는 의학연구와 그 결과의 적용과정에서 발생하는 철학적ㆍ사회적ㆍ윤리적ㆍ문화적 문제들을 주로 다룬다.

그 구성원을 보아도 전자는 의사와 간호사가 주축인 반면, 후자는 철학ㆍ사회학ㆍ법학 등 인문사회과학과 의학 및 생명과학 전공자가 고루 섞여있다. 그러나 실제 활동 내용을 보면 인문사회과학자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학회가 출발부터 분화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이유를 들라고 한다면, 의사나 간호사는 윤리의 문제를 주로 현장에서 당장 해결하여야 할 실무적 문제들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는 반면,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은 의학적 지식과 기술의 사회적 파급력이나 인간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 등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접근을 주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의사들은 윤리 연구에서 정답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범답안 정도는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지만, 의사들이 보기에 인문학자들은 답안을 도출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방식은 일상적으로 크고 작은 결정을 해야만 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볼 때 용납하기 어렵다.

따라서 두 학회의 분립은, 의학에 접근하는 문제의식과 방법, 그리고 학문 자체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생긴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실무지향의 의료윤리와 이론지향의 생명윤리가 구분되며 둘 사이의 대화는 제한적 범위에서만 가능하게 된다.

결국 의학에서 두 이념-생명을 지킨다는 추상적 이념과 실질적 결정을 내려서 환자의 복지에 기여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념-은 이렇게 갈라진 채 새로운 통합을 기다려야만 하게 되었다.

의료윤리와 생명윤리가 한결같이 잘 다루려고 하지 않는 또 다른 윤리의 영역이 있는데 그것을 필자는 전문직윤리라 구분해서 부를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전문직윤리는 넓은 의미에서 의료윤리의 영역에 포함될 수도 있겠으나, 의료전문인 개인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집단으로서의 전문직이 사회와의 암묵적 약속에 따라 수행해야 할 행위의 준칙과 규범을 다룬다.

전문직윤리는 각종 전문직 단체들이 제정하여 실천하고 있는 윤리강령과 지침 등에 명시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세계의사회의 윤리강령, 각급 의료인 단체들이 자율적으로 제정하여 실천하고 있는 윤리강령과 지침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다음 호에 계속 ▶

 

강신익 교수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강신익치과를 개원했었다. 다시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치과과장을 임하고 현재는 부산대학교 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서로는 『의학 오디세이(역사비평, 2007)』, 『철학으로 과학하라(웅진, 2008)』, 번역서로서는 『환자와 의사의 인간학(장락)』, 『사화와 치의학(한울, 1994)』 등이 있다.

저작권자 © 덴탈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