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

첫 번째 주장에서는 현실을 근거로 제도개혁을 이루지 못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며, 두 번째 주장에서는 제도를 근거로 현실적 책무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현실과 제도의 순환논법을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채 편리한대로 현실과 제도를 핑계거리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논리적 모순이 아니라 현실적 개혁의 가능성이며 책임소재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윤리적 의료관계를 확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열린 토론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한 토론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책임소재가 아니라 주체의식이다.

정부나 국민이 의사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지를 묻기 전에, 스스로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 아닐까? 주체 없는 자유는 허울 좋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개인과 집단의 자유로운 선택을 이상으로 삼는 자유주의적 윤리는 책임 있는 주체와 상대방에 대한 관용이 전제될 때에만 성립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이 금욕적이고 자기 규제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베버의 말을 다시 한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겠다.

서구의 전문직에게 부여된 자율적 통제권은, 전문적 지식을 이기적 동기에서가 아니라 공익을 위해 이타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선언과 그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규제하겠다는 의지를 사회가 인정하여 주어진 것이다.

자유주의적 윤리에서는 이러한 관계의 인식 대신에 개인과 집단의 개별적 권리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다. 국민의 입장

일반 국민들은 의료대란의 복잡한 원인과 전개과정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그 지긋지긋한 파업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리고 사태가 조속히 마무리되지 않은 것은 사태의 당사자인 정부의 무능력과 의사의 부도덕 때문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래서 정부와 의사를 싸잡아서 비난한다.

의사를 비난하는 근거는 주로 그들이 부유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것은 경험적으로 보아 크게 잘못된 평가는 아니다. 그렇게 부유한 의사들이 못살겠다고 노동자들이나 하는 파업까지 벌이는 것을 그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당연히 그러한 행동은,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려고 벌이는 부도덕한 행동이라고 규정한다. 잘못된 의료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의사의 주장은 아무래도 믿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의사를 꾸짖을 근거를 찾게 되는데, 그 근거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찾아진다.

(1) 도덕주의(Moralism)적 윤리

의사의 부도덕성을 비난하기 위해 흔히 언급되는 것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이다. 환자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하며, 의사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 선서는 세계의 모든 의사가 따라야 할 규범으로 여겨져 왔다.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병자를 버려두고 파업을 벌이는 의사는 이 선서의 첫 번째 규율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파업 당시 신문의 논조는 대부분 사정이 어떻든 빨리 환자 곁으로 돌아가라는 주문이었으며, 사태의 근본적 원인과 추이를 심층 취재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강신익 교수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강신익치과를 개원했었다. 다시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치과과장을 임하고 현재는 부산대학교 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서로는 『의학 오디세이(역사비평, 2007)』, 『철학으로 과학하라(웅진, 2008)』, 번역서로서는 『환자와 의사의 인간학(장락)』, 『사화와 치의학(한울, 199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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