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

따라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려는 자세의 전환이 필요하며, 문제의 본질을 비교적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제3자의 합리적 중재가 긴요하다.
이제 의료대란의 원인은 무엇이었으며, 의료대란의 상황에서 언론과 국민의 의사들에 대한 태도는 어떠했고, 그러한 관점에서 취할 것과 버릴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치과의사의 윤리를 확립하는 데 있어 배울 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자.

가. 의료대란의 원인
이 사태는 표면적으로 의약분업이라는 정책을 둘러싼 관련 당사자간의 다툼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20여 년 동안 축적된 불만과 모순이 일시에 폭발한 것이라는 분석이 더 정확한 것이다.

그동안 진료와 조제 업무가 분리되지 않았던 관행을 극복함으로써 약물의 오남용을 줄이고, 약품의 거래과정에서 공공연하게 용인되어오던 할증과 리베이트 등 불합리한 거래 관행을 없앰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정책 당국의 논리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어보였다.

그래서 사태의 초기 단계에 의사협회와 약사협회는 시민단체의 중재를 통해 어렵게나마 이 제도의 시행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수십 년동안의 관행을 일시에 극복할 수 없었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관행은 파행적으로 운영되어오던 우리나라 의료보험 정책에 그 근본적 원인이 있었다.

1976년 아무런 물적 토대도 없이 대통령의 지시 한 마디로 전격적으로 실시된 의료보험은 출발부터 의료대란을 예고하고 있었다.

보험의 실시에 따르는 막대한 재원을 마련할 수 없었던 정부는, 보험료의 강제 징수가 쉽고 고용자의 협조도 얻어내기 쉬운 500인 이상을 고용하는 대규모 사업장과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을 그 일차적 대상으로 결정한다.
그렇게 하고도 재원의 조달이 쉽지 않자 의료수가를 정부가 고시하는 강력한 수가 통제 정책을 편다. 결국 의료보험 수가는 관행수가 뿐 아니라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 묶이게 된다.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으나, 당시의 의사협회는 변변한 저항도 한 번하지 못한 채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는 당시의 의사들이 가지고 있던 정치적 성향의 문제이었고, 둘째는 실제적으로 의사들이 입게 될 손실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당시는 권위주의적 군사정권 치하에 있었으며 의사들은 계급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들에 대한 암묵적 지지 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권에 저항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초기에는 의료보험의 대상자가 전 국민의 10%도 되지 않았으므로 비보험 진료에서 그 손실분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강신익 교수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강신익치과를 개원했었다. 다시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치과과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부산대학교 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서로는 『의학오디세이(역사비평, 2007)』, 『철학으로 과학하라(웅진, 2008)』, 번역서로서는 『환자와 의사의 인간학(장락)』, 『사화와 치의학(한울, 199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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