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철학자 강신주의 강의를 듣고

박기헌 원장(부산 박기헌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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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강신주에게 치과의사의 행복에 대해 물었다. 철학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이 있다면 고난을 무릅쓰고 쓰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분명 이 시대의 지식인이다. 속세에 가장 추악한 면을 들추는 글을 쓰고, 이웃들이 힘들게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본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꼼짝없이 그는 거리의 철학자다. 그는 이 시대를 신자유주의에 의한 탐욕적 자본의 시대로 단정한다.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고, 시장을 존중하며,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탐욕이 문제였다.

2차 대전 이후 인간이성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 있었음에도,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탐욕을 과소평가 했다. 자본주의는 굴절되고, 중산층은 몰락하고, 빈부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금 우리 시대의 급류는 사이비들이 판을 치는 탐욕적 자본주의다. 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도록 저항해야 한다.

위대한 사람들은 힘들게 버틴 사람들이었다. 20대 나의 이상과 50대 지금 현실에 서있는 자신을 비교해 보라. 의사에서 의료서비스 제공자로 밀려나고, 의료의 상품화로 환자는 수단으로 밀려난다. 이 급류에서 우리는 의사 본질의 이상을 붙들고 버텨야 한다. 우리는 마케팅이나 상품화 논리에 휩쓸리지 않는 의사들이 여기저기 뿌리를 내려야 한다.

과잉진료 등으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한 내과의사의 예를 들면서,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과잉진료 하지 말고 버텨보자고 그는 주문했다.

공자의 제자가 언제까지 배워야 출세할 수 있는지 묻는 물음에,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때, 그 사이에 발생하는 부차적인 효과를 강조했다. 돈을 벌기 위해 환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고치니 돈이 들어오는 온다는 논리다.

맹자의 <양혜왕상>에 등장하는 고사를 비유하면서 강신주는 비겁하게 후퇴했으니 50보와 100보는 같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하지만 삶에서 50보와 100보는 완전히 다르다. 100보 보다는 50보를, 50보 보다는 49, 48보를 선택해야 한다. 되도록 적게 밀려나도록 버텨야 한다. 마케팅, 상품화, 탐욕적 이윤 추구와 싸워야 한다. 후배들에게 나는 의사처럼 살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불이 나도 산은 그 자리에 있다. 그 위에 다시 나무가 푸르게 자란다.

나치 정부에 쫓기다 국경을 넘지 못하고 자살한 유대인 철학자,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20세기 최후의 지성인이라 했던, 발터 벤야민은 그때그때 1보만이 진보라고 말한다. 한 번에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없다.

양두구육(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 지금은 사이비들이 난무하고 있다. 국민들 앞에서는 한 없이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뒤로는 온갖 특혜를 누린다. 국민은 웃어야 하는가? 울어야 하는가? 가짜보다 훨씬 악질적인 사이비, 이러한 양두구육이 세월호 참사를 낳았다.

마지막으로 그의 책 「비상경보기」에 나와 있는 건강불평등 방조할 것인가? 의료민영화에 대한 비판을 낭독했다. 가족이 아프면 집을 팔고, 사채를 얻어서라도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노다지가 펼쳐지는 의료현장에 수많은 자본들이 모여든다. 물론 그 피해는 모두 생로병사에 신음하는 우리 이웃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공공의료기관을 늘려야함에도 진주의료원을 오히려 폐업시키는 현실에서 사회복지를 말할 수 없다.

그는 의사와 판사의 강연 요청에는 응한다고 한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니 나서서 잘못된 부분을 고쳐보자고 한다. 부탁을 넘어 절규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조금만 힘들어도 투덜대지만, 어른이 되면 힘들어도 묵묵히 버틴다.

물론 치과계도 힘들다는 것 안다. 조금 넓게 보자. 문자 그대로 생존자체가 위험한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는 자살률 1위다. 강연과 함께 이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하려 한다.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자본주의는 이윤 추구를 위해서 홈을 파 놓는다고 한다. 물을 부으면 이 홈을 따라 흐르는 것처럼, 사람들은 생각 없이 이 홈을 따라 빚도 내고, 투자도 하고, 마케팅을 한다.

들뢰즈는 이 홈을 메워 편편한 유리처럼 만들라고 한다. 편편한 유리판에는 물이 여기저기 마음대로 흐를 것이다. 홈 속에서, 누군가 미리 만들어놓은 홈을 따라 생각 없이 움직이면서 서로 경쟁하고 자멸하지 말라는 것이다.

강신주도 출판계를 예를 들면서, 마케팅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한다. 질만 나빠지고 다 망한다는 것이다.한국에 자주 오는 철학자 지젝 교수는 21세기 인간형을 이렇게 표현한다.

“이데올로기에 조종당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살아 있지만 사실상 죽어있는 인간, 이것이 21세기 인간형이다.”

지젝은 우리가 생각 없이 이데올로기에 조종당하고 있지 않는지 멈춰서, 생각하라! 라고 주문한다. 들뢰즈가 홈을 메우라는 이야기나, 지젝이 이데올로기에 조종당하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나, 강신주가 버티라고 하는 이야기는, 우리를 깨우는 같은 죽비소리다.ㅍ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의심하고 사유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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