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수락암동 제1호분, 12지 신상, 고려
그림❶ 수락암동 제1호분, 12지 신상, 고려

고려시대 인물화에 관하여 하나의 시사를 던져주는 예는 앞에서 언급한 수락암동 제1호분에 그려진 12지신상이다.<그림1> 이 12지신상은 회칠을 한 벽면에 사신과 함께 그려진 것으로 손에 홀을 잡은 문관의 모습을 하고 관의 앞쪽 한가운데에 각각 상징하는 동물의 머리 모습을 지니고 있다. 

동서벽에는 각각 4구, 남북벽에는 각각 2구씩의 십이지신상이 그려져 있는데 모두 오른쪽으로 움직여가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들은 북송대(北宋代) 이공린의 백묘인물화(白描人物畵)를 연상시켜주는 유연한 선묘를 위주로하여 그려져 있어 고려시대의 인물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인물화법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에 남아있는 오백나한상(五百羅漢像)에도 비슷하게 나타나 있어 고려시대 인물화의 일반적인 경향을 엿보게 한다.<그림2>

고려시대에는 불교회화가 특히 발달하였다. 호화롭고 정교하여 귀족적인 아취(雅趣)가 넘쳐 청자(靑磁)와 더불어 이시대 미술의 경향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고려시대의 불교회화는 궁중과의 밀접한 관계하에서 이루어졌고 또 이 제작에 참여하는 불화사(佛畵師)들도 궁중을 중심으로 하여 활동하던 가장 우수한 작가들이었기 때문에 일반회화와 마찬가지로 당시 미술의 경향을 충분히 대변해 준다고 볼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불교회화는 일반적으로 억불숭유정책(抑佛崇儒政策)에 따라 궁중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주로 지방화공들의 손에 의해 제작이 이루어졌던 조선왕조시대 불교회화와는 성격이나 사료(史料)적인 비중에서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다. 

고려시대의 불교회화는 앞에서도 논했듯이 중국에서도 높이 평가되어 주문을 해 오기도 했던 것이다. 우수한 작품들은 일본에 주로 전해지고 있는 데 그것도 13세기 이후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지금 남아 있는 고려시대 불교회화의 거의 전부가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양류관세음보살(楊柳觀世音菩薩), 지장보살(支裝菩薩)등 내세(來世)의 안락(安樂)과 깊은 연관이 있는 불보살(佛菩薩)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❷ 오백나한상, 고려, 1235년작
그림❷ 오백나한상, 고려, 1235년작

이 점은 호국(護國)보다는 호신(護身)을, 그리고 현세보다는 내세인 극락(極樂)에 보다 더뜻을 두었던 고려 후기사람들의 사상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면 고려시대 불교회화의 대표적인 예를 몇점만 추려서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불교회화로서 가장 연대가 오래된 것은 지원 23년(1286)의 연기(年紀)가 있는 개인소장의 아미타여래입상(阿彌陀如來立像)이다. 

빨간 바탕에 황금색의 둥글고 큰 무늬들이 박혀 있는 가사(袈裟)와 금색의 무늬가 장식된 군의를 입고 있는 이 아미타여래의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첫눈에 호화롭고 정교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보관(寶冠)없는 머리에 계주가 있고 가슴위에 왕자 표시가 되어 있으며 머리뒤에는 둥근 두광이 나타나 있고 또 발밑에는 연화가 곱게 피어 있어 이 불(佛)이 바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아미타여래입상임을 말해 준다.<그림3> 

얼굴은 왼편을, 몸은 정면을, 그리고 발은 오른편을 향하고 있으면서 삼곡(三曲)의 자세를 보여준다. 
포치(布置)와 채색은 매우 훌륭하게 처리되었다. 그러나 규칙적으로 반복된 옷주름의 경직성은 일견 매루 호화스럽고 정교하기만 해 보이는 이상의 그림이 그 이전의 오랜 불교회화전통의 먼 길을 걸어왔음을 시사해 준다. 
즉 고려초기부터 이루어진 고려특유의 호화롭고 부드러우며 정치(精緻)한 불교회화가 오랫동안 반복하여 제작되어 내려오면서 13세기에 이르러서는 이 아미타여래입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편으로는 호화로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직된 경향의 불화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작품 이전으로 올라가는 고려초기의 불화가 없어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대부분의 초기 불화들은 이 작품보다는 훨씬 격이 높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이 아미타여래입상이 고려후기의 불교회화의 특색과 불교미술의 일반적인 경향을 잘 보여 주는 것임에는 틀림없다.혜허의 양류관음상은 지금 남아서 전해지고 있는 고려시대의 회화중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의 하나이다.<그림4>
이 그림은 비단 바탕에 아름다운 채색을 써서 정교하게 그려져 있는 데 화폭의 오른쪽 하단부에 해동치선혜허필(海東癡禪慧虛筆)이라 금서로 쓰여있다. 

물방울 또는 버들잎같은 광배를 배경으로하여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든 채 왼편으로 발을 옮겨놓는 듯한 유연한 자태의 관음보살을 묘사했다. 
곡선진 몸매, 부드러운 동작, 투명한 옷자락, 호화로운 장식, 섬섬옥수의 갸날픈 버들가지, 길고 가는 눈매와 작은 입등 모두가 고려적인 특색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이목구비는 물론 옷자락과 문양하나하나까지 완벽할망큼 정교해 소흘히 다루어진 곳이 거의 없다. 크게는 전체적인 구조로부터 작게는 옷자락의 올 하나까지도 정성껏 그리고 능란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그려져 있다. 이 점은 일본에 전해지는 기타의 많은 고려불교회화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우리는 고려시대 불화사(佛畵師)들이 지향했던 완벽을 향한 조형의지를 엿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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