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록상의 주요 화가 및 유존 작품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고려시대의 회화는 매우 다양하면서도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던 것으로 믿어지나 지금 전해지는 작품들은 수적으로 매우 드물고 그나마 잔편(殘片)인 경우도 있어 회화사 연구에 크나큰 장애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렇듯 영세한 작품들조차도 뛰어난 수준의 것이 드물어 현재 남아 있는 작품만으로 고려시대의 회화를 이해하는 것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현재 전해지는 작품들은 고려시대 회화의 일부만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고 또 결코 고려시대 회화의 정점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하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의 대부분이 고려 후기의 것들이기 때문에 고려 초기의 회화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직접적인 사료가 되기 어렵고 오직 밟고 유추해 볼 수 있는 디딤돌이나 실마리의 역할밖에 하지 못함도 아울러 유념해야 한다. 어쨌든 현존하는 회화 자료로 참고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은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의 판화이다.
 

그림❶ 어제비장전의 판화, 고려, 11세기, 서울 성암고서박물관 소장

이 판화는 비록 불교미술품이기는 하지만 고려 초기의 산수화 양식을 어림해 보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그림 1)
어제비장전은 본래 북송(北宋) 태종(재위 976~997)의 불교 관계 저술로서 983년경에 완성된 20권본과 996년경에 완성된 30권본으로 나누어진다. 
이 두 종류의 비장전은 우리나라에서 각각 11세기 전반기와 후반기에 간행됐던 것이다. 비장전은 불도의 깊은 뜻을 읊은 본문과 판화로 이뤄져 있는데 바로 이 판화 부분이 이곳에서 우리의 관심 대상이 되는 것이다.

고려시대에 간행된 비장전은 30권본이 일부 쿄토의 난겐지(南禪寺)와 서울의 성암고서박물관에 전해지고 있다. 
난젠지의 것은 권 13이, 성암고서박물관 것은 권 6이 남아 있다. 또 이것들과 비슷한 중국 북송대(北宋代)의 비장전 권 13이 미국 하바드 대학의 포그 미술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 중국 비장전 권 13권과 난젠지 소장의 고려비장전(高麗秘藏銓) 권 13에 관해서는 하바드 대학의 막스 회어 교수가 상세히 고찰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비장전의 판화는 비록 그것이 불도의 보리도량(菩提道場)을 묘사한 것이기는 하지만 10세기와 11세기를 전후한 고려와 북송에 있어서의 산수화 양식을 반영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일반회화사에 관련해서도 막중한 비중이 차지하고 있다 하겠다.
이 판화들에 보이는 산수화는 상당히 발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례로 성암고서박물관 소장의 어제비장전 권 6, 제2도와 제3도를 보면 고원(高遠), 심원(深遠), 평원(平遠)의 삼원이 갖춰져 있고 공간이 효율적으로 마련돼 있으며, 예리한 관찰에 의한 정확한 묘사력이 완연히 드러나 보인다.(그림 1, 2)
제2도(그림 1)는 한 승려가 무릎을 꿇고 앉아 고승(高僧)의 설법을 듣는 장면과 이 설법을 듣고자 찾아오는 장면, 그리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장면 등을 묘사한 것인데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서사적인 내용의 전개가 매우 효율적이다. 
고승이 앉아 있는 정자의 주위를 수면이 휘감고 다시 그 물가에는 높고 낮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넓직한 공간을 시사하고 있다. 정자 뒤쪽의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넓직한 공간을 시사하고 있다. 

정자 뒤쪽의 산들이 나지막하고 평원적인 후퇴를 보여주는데 비해 정자로 이어지는 다리 건너 길목의 산들은 지극히 높고 험준해 고원적인 상승감을 자아낸다. 이처럼 좌우의 구도가 서로 대조를 보이면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산들을 감싸고 있는 상운(祥雲)과 각종 수목, 그리고 산주름의 표현도 매우 구체적이고 설명적이다.

그림❷ 어제비장전의 판화, 고려, 11세기, 서울 성암고서박물관 소장 그림❸ 노영, 「지장보살도」, 고려, 1307년, 흑칠금니소병,국
그림❷ 어제비장전의 판화, 고려, 11세기, 서울 성암고서박물관 소장 

제3도(그림 2)도 제2도와 대체로 비슷한 내용을 묘사하고 있다. 산의 표면 처리에 보이는 일종의 우점준(雨點皴), 산허리에 돋아난 치형돌기(齒形突起), 그리고 여러 가지 종류의 나무와 풀포기의 표현 방법 등이 특히 눈길을 끈다.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양식적(樣式的) 특색을 종합해 보면, 이 어제비장전의 판화는 오대말(五代末)부터 북송대(北宋代)에 걸쳐 유행했던 산수화풍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고려 초기에는 북송대 산수화풍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짙다.

그러나 이 성암고서박물관 소장의 비장전 판화와 교토 난젠지 소장의 고려시대 비장전 판화를 하바드 대학의 포그 미술박물관 소장의 비장전 판화와 비교해 보면 전체적인 구도나 공간 처리, 그리고 세부 묘사에 있어서 이미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어 고려 초기의 회화가 중국으로부터의 영
향을 바탕으로 벌써 독자적인 양식을 형성해 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지금 남아 있는 고려의 회화 중에서 이 시대 산수화의 또 한 가지 경향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노영(魯英)이 흑칠금니소병(黑漆金泥小屛)에 그린 「지장보살도(持藏菩薩道」를 들 수 있다.(그림 3)
산수를 배경으로 한 이 그림은 옆편에 적힌 관지(款識)에 의해 대덕(大德) 11년(1307년) 정미세에 강도(江都) 선원사 반두 노영이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흑칠에 금니를 써서 소병의 앞뒷쪽에 그린 것으로 앞쪽의 그림은 산수를 배경으로 묘사했다. 필공양(筆供養)을 맡았던 노영의 배례(拜禮)하는 모습도 반가부좌한 본존불의 왼편 언덕 위에 나타나 있다. 

그림❸ 노영, 「지장보살도」, 고려, 1307년, 흑칠금니소병,국립중앙발물관 소장
그림❸ 노영, 「지장보살도」, 고려, 1307년, 흑칠금니소병,국립중앙발물관 소장

본존과 지장보살의 모습은 삼고저(三鈷杵)로 테둘림한 화면 안에 묘사돼 있는데, 본존의 의습은 유연하고 구불구불한 선으로 표현돼 있어 서역 출신으로 당대에 활동했던 승려화가 위지을승의 화풍을 연상시켜 준다.

배경의 산수는 험준하고 날카로운 고산들로 이뤄져 있는데, 이 산들의 주위에는 역시 상운이 감돌고 있다. 이 산들은 비록 간일하게 표현돼 있기는 하지만 뚜렷한 윤곽선과 치형돌기(齒形突起)m, 침형세수(針形細樹) 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반적인 양식은 대체로 북송대 이곽파 화풍의 대가였던 허도녕의 「산수도」에 매우 가깝다.

이제까지 살펴본 어제비장전의 판화와 이 흑칠금니소병의 「지장보살도」(그림3)는 고려 초기와 14세기 초엽경까지는 일반 산수화는 물론 궁중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화승들의 <산수를 배경으로 한 불교회화>에서도 북송 계통의 웅장한 대산대수식(大山大水式)의 산수화가 유행하고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고 하겠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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