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회화
고려시대의 회화
  • 안휘준 교수
  • 승인 2020.02.0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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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록상의 주요 화가 및 유존 작품

<지난 호에 이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고려시대에는 회화를 전문으로 했던 화원들 이외에도 왕공사대부 등의 여기화가(餘技畫家)들과 승려화가들이 크게 활동했던 것이다. 고려시대 화원으로 이름이 전해지는 사람은 몇 명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시대의 화원으로 가장 이름을 날렸던 사람은 예종조(1105~1122)와 인종조(1122~1146)에 활약했던 이녕이다. 

고려사의 열전에 있는 그에 관한 기록을 보면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으로 이름이 알려졌고 인종조에는 추밀사(樞密使) 이자덕을 따라 송나라에 들어갔는데 이 때 송의 휘종은 한림대조인 왕가훈과 진덕지, 전종인, 조수종 등으로 하여금 이녕에게 그림을 배우도록 했으며 이녕에게 본국의 「예성강도」를 그리게 했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보고 휘종은 그동안 중국에 왔던 고려의 많은 화공들 중에서 이녕만이 묘수(妙手)라고 칭찬하며 술과 음식과 각종 비단을 줬다고 한다. 이 기록으로 미뤄봐 이녕의 그림 실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예성강도」나 「천수사 남문도」 등에 나타난 화풍에 관해서는 작품이 전해지지 않고 있어 알 길이 없다. 
다만 자신이 뛰어난 화가였던 휘종이 그토록 높이 평가했다는 사실로 보면 궁정취미가 짙고 시적이면서도 사실적인 화풍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이녕은 소시적에 숭반 이준이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산수를 특히 잘 그렸고 의종(1146~1170) 때에는 궁중 내의 모든 회사(繪事)를 주관케 했던 것이다. 

또한 그의 아들 이광필은 명종(1170~1197)의 총애를 받았고 또 왕의 명에 따라 문신들이 지은 소상팔경부(瀟湘八景賦)를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이녕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문화가 크게 꽃피던 12세기 전반과 중엽에 활약했던 대표적 화원으로 가법을 형성했고 「예성강도」와 「천수사 남문도」를 그리는 등 실경산수의 전통을 이뤘던 인물인 것이다.
이 밖에 고려시대의 화원으로는 이광필과 함께 명종을 가까이 모셨던 고유방, 의종 때의 유명한 초상화가인 이기, 「이상귀휴도」를그렸던 박자운 등의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의 화원들의 화풍도 왕이나 왕족들의 후원이 없었다면 크게 진척되지 못했을 것이다. 
회화의 발전에 있어서 왕공사대부들은 새로운 화풍을 주도하고 뛰어난 화원을 지원하는 일이 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 못지않게 빈번했을 것으로 믿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왕공사대부 화가들은 큰 관심의 대상이 된다.
먼저 왕으로서 그림을 잘 그렸던 대표적 인물로는 산수를 잘하고 이광필, 고유방 등과 종일토록 그림을 즐겼던 명종(1170~1197), 연경에 만권당을 짓고 이제현을 불러다 원나라의 조맹부와 주덕윤 등 대표적 화가들과 교류했던 충선왕(1308~1313), 그리고 고려 말의 공민왕(1351~1374)을 들 수 있다.

명종과 그가 아끼던 이광필 및 고유방의 화풍에 대해서도 아무런 단서를 잡을 수 없다. 그러나 충선왕과 이제현이 원나라의 조맹부 및 주덕윤과 교류했다는 사실은 당시의 원대 화풍의 중요한 두서너 가지의 조류가 우리나라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짙음을 시사해 준다. 즉, 조맹부는 원대 남종문인화의 기틀을 세웠고 이곽파 화풍을 수용했으며 그를 가까이 따랐던 주덕윤은 원대 이곽파 화풍의 주도적 화가로서 남종화풍의 그림도 그렸던 인물이므로 이들을 통해 이곽파 화풍과 어쩌면 남종화풍까지도 우리나라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추측된다. 
특히 조맹부의 서체인 송설체가 고려 말부터 조선왕조에 걸쳐 가장 널리 수용됐던 사실을 감안하면 최소한 그의 화풍이 고려 화단에 소개됐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된다.

공민왕은 10대에 원나라에 갔으며 원나라 위왕의 딸인 노국공주와 결혼했다. 원나라의 수도였던 북경에 머물면서 그곳의 화풍을 익혔을 것으로 믿어지나 당시 중국의 강남지방에서 유행하던 남종화풍을 수용했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으며 특히 그림에서는 인물, 초상화, 산수에 모두 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염제신을 비롯한 신하들의 초상과 자신의 왕비인 노국공주의 초상화를 그렸고 그 밖에 거울에 비친 자기의 초상을 그려 자화상의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달마절위 도강도」, 「동자보현육아백상도」, 「석가 출산상」등을 그렸던 것이 기록들에 보이고 있어 선종화(禪宗畵)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천산 대렵도」등의 잔편(殘片)들은 대체로 북종화적인 경향의 화풍을 지니고 있어 그가 당시 북경의 화풍과 보다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고려시대의 문인화가로 이름을 남긴 이는 화원의 경우보다 훨씬 많다. 이녕의 어린 시절 스승이었던 이준이, 「해동기로도」를 그린 이전과 그의 아버지인 이존부, 물고기를 잘 그린 정득공, 매화를 잘 그린 정지상과 차원부, 그리고 묵죽을 잘 그린 정서, 이인로, 안치민, 정홍진, 김군수, 이암 등은 문인 화가의 대표적 예들이다. 
이 밖에 신분을 뚜렷이 알 수 없으나 산수를 잘 그렸던 윤평과 신덕린의 존재가 눈에 띈다.
그런데 고려시대의 묵죽화에는 북송 때의 소동파와 문동, 그리고 원나라 조맹부의 영향이 가장 크게 미쳤던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승려화가로서 그림을 잘 그렸던 인물로는 「백의관음상」을 그린 한생, 노송과 노회를 잘 그린 석귀일, 선원사 벽화를 그린 노영과 학선, 묵죽을 잘한 석행, 원나라 유도권 화풍의 산수를 그린 혜근, 초상을 잘 그린 지암, 인물과 용을 잘 그린 석풍 등이 있다.
이러한 승려화가들의 경우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소병(小屛)을 남긴 노영을 제외하고는 전혀 작품이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이들과 문인화가들 및 화원들과의 화풍상의 관계 등에 관해서 어림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이 세 계층 간의 관계가 비교적 가까웠을 것을 고려하면 신분상의 차이가 곧 화풍상의 차이를 의미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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