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도덕 판단이 일차적으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이라는 말씀까지 하셨어요. 오늘은 “도덕적 갈등” 열일곱 번째 시간입니다. 

샘: 그렇죠. 그런데 도덕적 행위자로서 우리는 굉장히 어려운 세계에 살고 있어요. 

강: 무슨 뜻인가요? 

샘: 타인들의 행동을 뜻한다고 짐작할 수도 있는데 그런 뜻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요. 

강: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군요. 

샘: 고통을 줄이는 일과 생명을 연장하는 일이 상충하지 않는 세계는 개념적으로는 전혀 모순이 없어요. 환자들이 진실을 대면하고 전혀 상처입지 않는 세계를 막는 문제가 논리적으로는 없고요. 

강: 그런데 그렇지가 않잖아요? 

샘: 그래요, 우리가 사는 현실의 세계는 그렇지 않지요.

강: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없다는 게 그런 뜻이군요. 

샘: 양가감정이 행위자의 상태이고 딜레마가 행위자의 부담이고 고민이 행위자의 동반자죠. 

강: 예, 어쨌든 욕구의 비정합성이 문제가 아니고 문제는 경험세계다. 이 말씀이죠! 

샘: 그러면 생명을 존중하면서도 신체에 대한 여성의 권리도  존중하는 의사는 어떨까요?

강: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못 가고 우리에게 무모하게 덤비는 현실을 절감할 것 같아요. 

샘: 그렇다고 이 의사가 도덕적 사유의 자원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나요? 

강: 매킨타이어가 정확히 뭐라고 했나요? 

샘: 두 개의 경쟁적인 논증의 전제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사이에 공통의 도덕적 근거가 없다고 했어요. 

강: 그건 맞는 말 아닌가요? 

샘: 그걸 잘 보세요. 사실 문제가 되는 경쟁적 논증들이 사실은 한 사람이 선택에 직면했을 때에 해볼 수 있는 도덕추론의 전혀 다른 두 가지 국면이지 않나요? 

강: 아,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다른 사람끼리의 충돌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사유 속에 다 있다는 말씀이신 거로군요. 그것도 맞아요, 선생님.

샘: 둘 다 똑같이 맞아요? 사실은 이게 더 흔한 일이지요. 

강: 아하. 바로 이런 것을 자원이라고 하지 않으면 뭘 가지고 자원이라고 하겠느냐? 이게 선생님의 입장이시군요! 매킨타이어는 쓸 만한 자원이 전무하다고 했으니 선생님과 정면 배치되는 입장이네요.

샘: 내 말이 바로 그겁니다! 

강: 그러면 왜 두 논증 사이에 공통의 근거가 없는 것일까요? 

샘: 두 경쟁 원칙이 과거에서 온 서로 무관한 조각들이어서 그럴 수 있겠지요. 사람의 하나의 진정한 목적의식이나 본성이나 이런 것에 의해서만 제공되는 논리적으로 정합적인 토대에서 나온 게 아니라 이런 것들과 동떨어진 과거에서 온 서로 다른 것들이기에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강: 말 그대로 애매모호합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하면 우리가 과거로부터 얻은 자원 자체가 애매모호한 것일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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