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모더니즘을 향하여 II

# 입체주의, 추상주의
현대 회화의 또 다른 흐름은 세잔에게서 흘러나왔다.
세잔은 인상주의의 생생한 색채 효과는 높이 평가했으나 ‘사물성’을 사라지게 만드는 그것의 경향에는 비판적이었다. 
그의 목표는 인상주의와 고전주의를 종합하는 데에, 말하자면 인상주의의 색채 효과를 보존하면서 물그림자 같은 그것의 덧없는 이미지에 다시 일상의 촉각적 실체감을 부여하는 데에 있었다.
그리하여 세잔의 화면 속의 형태들은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해 마치 덧없는 이미지 속에 깃든 단단한 핵과 같은 인상을 준다. 
나아가 세잔은 ‘원근법“이라는 500년 묵은 예술의 규약에서 회화를 해방시켰다.
단일 시점으로 구축된 원근법적 공간과 달리 세잔의 화면에는 초점이 다른 여러 개의 시점이 공존한다.
세잔의 화면에서 공존하는 시점들 사이에 존재하는 균열은 교묘히 감추어진다.
이질적 시점들을 봉합해 하나의 총체상을 제시하려 했다는 점에서 세잔은 여전히 고전주의적이었다.
그 분열을 감추거나 봉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낼 때 ‘입체주의’가 탄생한다. 
세계가 하나의 시점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시점으로 파편화할 때 화면에서 3차원 공간의 환영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2차원 구성의 평면이 들어서게 된다.
분석적 입체주의 단계에서 피카소(그림 1)와 브라크의 그림을 보라. 

수많은 시점을 내포한 각각의 파편이 평면에 균등하게 분포돼 있어 ‘입체주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매우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분석적 단계에서 형은 수많은 시점의 파편들로 해체된다.
신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선(線)에서 자라나온 마티스, 그리고 인상주의와 고전주의를 종합하려 한 세잔의 궤적을 따라온 피카소.
칸딘스키는 “마티스-색체, 피카소-형태”라며 이 두 인물을 “현대미술의 위대한 이정표”라 불렀다.
그의 말대로 마티스는 재현의 의무에서 색채를, 피카소는 재현의 의무에서 형태를 해방시켰다.
|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면 회화는 마침내 아무것도 닮지 않은 순수한 형과 색의 유희에 도달할 것이다. 
하지만 마티스도 피카소도 그 마지막 발걸음을 내디디지는 않았다.
그 걸음을 내디딘 것은 칸딘스키였다.
칸딘스키는 형과 색이 굳이 어떤 가시적 대상을 재현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상징적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그림 2)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칸딘스키의 변신이다.
표현적 추상에서 출발한 칸딘스키의 화풍은 바우하우스의 교사로 근무하던 1920년대에 기하학적 추상으로 변모한다.(그림 3) 

표현주의의 바탕에는 기계문명에 억압당한 자연과 생명의 외침이 깔려 있다.
반면에 기하학적 추상의 바탕에는 기계와 인공의 논리가 깔려 있다.
신체의 움직임은 무한히 다양하나, 기계는 그저 원운동 아니면 직선운동만 할 수 있을 뿐이다.


# 아르누보, 아르데코, 그리고 모더니즘

과거에 아름다움의 기준은 ‘자연’이었다.
그때만 해도 예술은 ‘자연미의 모방’으로 이해됐다.
하지만 산업혁명과 더불어 주위의 환경 자체가 자연에서 인공으로 변해버렸다.

그에 따라 자연을 모범으로 삼아 형성된 인간의 지각 방식과 미적 취향에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 변화에 대한 최초의 대응은 추악한 현재를 떠나 아름다웠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미술과 공예 운동’은 기계로 생산한 산업 생산물에 다시 고전적 아름다움을 부여하려 했다.
하지만 기계 혹은 기계의 산물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입히는 것은 사실 미학적으로 매우 어색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취향은 보수적이어서 19세기 후반까지도 ‘아르누보’처럼 산업 생산물에 유기적 자연의 외향을 입히려는 절충적 디자인이 이어졌다.
아르누보보다 훨씬 현대적으로 보이는 ‘아르데코’도 여전히 자연미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완전한 인공미의 취향은 20세기에 구축주의·데스테일·바우하우스와 더불어 사회에 본격적으로 관철되기 시작한다.
산업혁명은 유리·강철·콘크리트 등 이제까지 없었던 인공적 재료들을 탄생시켰다.
이 재료들은 당연히 석재나 목재와 같은 자연적 재로와는 완전히 다른 미학을 요구했다.
회화의 기하학적 추상은 이 새로운 재료가 제기하는 미학적 요구를 순수 미술에서 받아들은 현상이었으리라. 
기하학적 형태에 대한 20세기의 취향은 결국 산업혁명 이후 진행돼온 노동의 기계화가 예술의 영역에서까지 관철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프랑스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iser, 1887~1965)는 기계 미학을 주창했다.(그림 4) 

과거에 아름다움의 기준은 ‘자연’이었으나 그 자리를 이제 ‘기계’가 차지하게 된다.
형태는 기능에서 나온다.
기능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이 새로운 미감을 우리는 ‘모더니즘’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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