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모더니즘을 향하여

#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인상주의는 사실주의의 정신 속에서 탄생했다.
사실주의자들은 ‘진실’을 추구했지만 스튜디오 안에서 기억과 상상에 의존해 그림을 그렸다.
그런 의미에서 이젤을 들고 야외로 나간 인상주의자들이 어쩌면 그들보다 더 사실주의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주의자들이 사물을 ‘아는’ 대로 그렸다면 인상주의자들은 실제로 ‘보이는’ 대로 그리려 했다.
그들은 색은 곧 빛이므로 고유색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물리적 색채와 실제로 지각되는 심리적 색채가 서로 다름을 알았다.
인상주의자들은 빛을 그림으로써 사실주의자들이 여전히 고수했던 ‘색에 대한 형의 우위’라는 고전적 원칙을 무너뜨렸다.
인상주의의 화면에서 형의 명확성은 산란하는 반사광 속에서 와해된다. 

인상주의자들은 사실주의자들이 고수한 또 다른 고전적 교리, 즉 ‘형식에 대한 내용의 우위’마저 무너뜨렸다.
사실주의자들에게 회화란 이미지를 통해 진실을 말하는 수단이었다.
반면에 인상주의자들은 회화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제재나 주제는 그저 그림을 그리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처리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인상주의 화면은 실제로는 원근법적 깊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인상주의자들은 빛을 그리려 했기에 그들의 화면에서 배경과 형상의 구별은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둘 다 사물에서 반사돼 눈으로 들어온 빛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신인상주의자들은 인상주의의 기획에서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수정하려 했다.
빛은 섞을수록 밝아지는 반면 물감은 섞을수록 어두워지기에 물감으로 빛을 그린다는 인상주의의 기획은 애초에 성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쇠라와 시냐크는 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섞는 대신 화면에 원색의 색점들을 병치하는 기법을 고안해냈다.
그들은 이 색광주의가 현실의 과학적으로 더 정확한 재현의 방식이라 믿었다.
하지만 예술은 과학이 아니다.
신인상주의의 화면은 어딘지 광학 이론의 도해와 같은 인위적 느낌을 준다.
한때 신인상주의에 동조한 피사로가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다시 인상주의로 복귀하는 것도 실은 그 때문이었다.

신인상주의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화면에는 빨강・파랑・노랑의 삼원색만 남아야 한다.
실제로 후기로 갈수록 신인상주의의 화면은 미세한 색점이 아니라 두꺼운 원색의 스트로크로 채워진다.
인상주의자들의 화면 역시 후기로 갈수록 원색으로 변해간다.
인상주의자들은 신인상주의의 등장 이전부터 이미 하나의 색은 그것의 보색 옆에서 더 생생하게 보인다는 인식 하에 보색대비를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두꺼운 원색의 스트로크들로 이뤄진 화면은 실제로 눈에 보이는 풍경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그 그림들은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느끼는’ 대로 그린 것이기에 외부 세계에서 받은 ‘인상(impression)’이라기보다는 작가의 내면세계의 ‘표현(expression)’에 가깝다.

 

# 상징주의, 야수주의 

바로 여기서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는 후기 인상주의로 이행한다.
고흐의 굵고 짧은 스트로크들은 여전히 신인상주의의 자취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림의 전체적 분위기는 인상주의를 넘어 이미 표현주의에 근접해 있다.

한편 고갱은 인상주의자들이 추방시킨 윤곽선을 화면에 다시 도입했다.
두꺼운 윤곽선으로 구획된 화면은 차라리 현대적 구성의 평면으로 보인다.
이는 그의 작업이 더 이상 인상주의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는 눈에 보이는 일상의 풍경이 아니라 상상할 수 있을 뿐인 성서와 신화의 제재를 다시 도입한다.
이는 그가 이미 가시적 세계의 재현을 떠났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그의 타이티 그림들은 명확한 상징주의적 경향을 드러낸다.

상징주의 운동은 라파엘전파 못지않게 복고적이었다.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전통적 제재들을 다시 들여온 것이나, 그림에서 의미의 전달을 강조하는 것은 현대미술의 형식주의적 경향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징주의가 그저 미술사의 퇴행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다.
상징주의 회화는 전통적 도상학으로는 독해가 불가능하다.
상징주의 회화는 작가 자신만의 내밀한 의미를 담고 있어 사람마다 다양하게 해석되곤 한다.
현대미술 자체가 실은 ‘상징적’ 특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칸딘스키는 색채와 도형을 그 자체로서 고유의 의미를 가진 상징으로 간주했다. 현대미술의 이 상징적 경향이 이미 상징주의에서 그 전조를 보인 셈이다.
여기서 야수주의까지는 단 한 걸음뿐이다.

누드를 그린 마티스의 두 작품을 비교해보다.

그림 1. 사치, 고요, 쾌락, 앙리 마티스, 1904년
그림 1. 사치, 고요, 쾌락, 앙리 마티스, 1904년

먼저 <사치, 고요, 쾌락>(그림 1)은 아직 신인상주의의 영향을 보여준다.
하지만 강렬한 원색과 두꺼운 윤곽선에서 이미 후기 인상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이 엿보인다.

그림 2. 삶의 기쁨, 앙리 마티스, 1906년
그림 2. 삶의 기쁨, 앙리 마티스, 1906년

두 번째 작품 <삶의 기쁨>(그림 2)에서는 점묘가 사라졌다.
인물은 굵은 윤곽선에 둘러싸이고 그 안쪽은 마치 광택이 나는 락커처럼 매끈하게 칠해졌다.
그뿐인가? 앞의 작품에는 원근법적 공간이 존재하나 뒤의 작품에는 그것이 파괴돼 있다.
<삶의 기쁨>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상징적 공간을 보여준다.
그것은 3차원 공간의 환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2차원 구성의 평면에 가깝다. 최초의 현대 회화가 탄생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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