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받은 만큼 책임도 더 무거워...장애인진료 봉사는 곧 그들과 동화되는 것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강산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신념으로 봉사를 해 왔던 이승룡(뿌리샘치과) 원장이 지난 9월 5일 제20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 2019 서울사회복지대회에서 서울특별시장상을 수상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이 원장은 서대문구 한마음 정신장애인 시설에서 묵묵히 진료해 왔다. 가을이 다가오는 길목에서 이 원장을 만나 봉사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이 원장의 특별함을 들여다 봤다.(편집자주)

"장애인들과 대화가 오히려 더 잘 됩니다."(하하)

이승룡 (뿌리샘치과) 원장<사진>은 정신지체 장애인들과 함께했던 시간 만큼이나 이제는 그들과의 대화에도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처음에는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들에 대한 왜곡된 시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스스럼없이 그들과 함께 하고 호흡하면서 어느새 그들의 손이 되고 발이 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원장에게는 봉사라는 의미보다 그들과 함께 어루어져가는 것이 삶의 일부가 되고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처럼 보였다.

“저 외에도 뒤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과 저의 차이는 단지 저는 수상할 기회를 얻은 것 뿐입니다.” 이원장은 그래서 묵묵히 이름없이 진료봉사하는 전국의 많은 봉사자들에게 이 상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가진 것이 많아야 나눌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록 작은 것 하나도 함께 나눌때 그 의미는 더 크다는 메시지를 전해줬다.

“치아를 모두 가지고 있다면 치아가 없는 이들의 아픔과 치아의 소중함을 알 수가 없습니다. ” 이 원장은 처음 치과의사가 되고 나서의 서른 살의 기억을 떠올렸다.

바로 치아가 없었던 할아버지의 고통을 그 당시에는 몰랐다고 한다. 단지 할아버지는 위가 좋아서 치아가 없어도 식사를 잘 하실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때의 우매한(?) 생각 때문에 정작 할아버지에게는 틀니를 제공해 드리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그 기억 때문에 개원초기부터 어르신들을 위한 틀니를 제작해 왔다.

대학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꺼려하는 장애인시설에서 그러한 선입관을 극복하고 일하는 친구를 지켜본 감동은 이 원장을 오늘에 이르게 했다.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치아나 구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들을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겉으로 봤을때는 정신 장애인을 치료하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두려워하지만 실제로는 약을 먹으면서 컨트럴하기 때문에 진료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어느 덧 함께한 세월만큼이나 이원장은 그들에게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아빠처럼 때로는 형님처럼 다가가며 그들과 함께 동화되어 가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치과의사 말도 잘 듣고 행동도 잘 따라 합니다"그렇게 시작된 장애인들과의 생활이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삶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선배 치과의사로서 후배 들에 대한 염려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너무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가지고 있는 특기나 장기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보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그는 우리가 하는 진료가 반드시 생업이라는 생각이라는 목적의식을 버리고 더 늦기 전에 베풀고 나누는 삶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수상소감을 묻는 질문에 "봉사를 계속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함께 상 받은 만큼 책임은 더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부담이 되면서도 기분은 좋더라구요”(하하)

이 원장은 더 세월이 흐르기 전에 봉사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치과의사에 대한 환자들의 인식이 많이 나빠진 것이 사실이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양분이 되듯 이원장의 작은 봉사가 밀알이 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다고 했다.

이 원장의 일상은 늘 바쁘다. 진료봉사외에도 치문회 회장과 협회 산하 동호회 단체 치과의사검도회에서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상반기 하반기 춘계추계로 모여서 치과의사이면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운동도 하고 연무도 같이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거기서 그는 검도를 하고 있다.
학회활동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대한통합치과학회 부회장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협회장 선거와 관련 러브콜이 올 수도 있겠다고 막연한 기대와 그를 수락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흔히 말하는 ‘정치’ 아닌 ‘正治’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했던 시인 윤동주 처럼 어쩌면 그는 그 옛날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아쉬움과 연민으로 오늘도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하루 하루의 삶도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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