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현대미술을 예고하다


본 지는 앞으로 수 회에 걸쳐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인상주의편을 연재하려고 한다. 인상주의는 미학사에 있어 그 의의는 상당하다. 현대미술의 시초가 되는 인상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곧 현대미술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진중권의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을 찾아가길 바란다. (편집자주)


지난 호에 이어 ▶

고갱이 자신만의 필법에 도달하는 것은 1886년 이후의 일이다. 1886년 고갱은 석 달을 브르타뉴 남쪽의 퐁타벤이라는 마을에서 보낸다. 브르타뉴 지방은 원시에 가까운 풍경을 갖고 있어 코로․위고․발자크와 같은 저명 화가나 문인들이 작품의 영감을 얻기 위해 즐겨 찾던 곳이었다.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기서 열심히 작업하고 있으며 성과도 내고 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이곳에서 왕성한 창작욕을 불태웠다. 고갱은 그의 뒤를 따라 그곳에 온 에밀 베르나르, 폴 세뤼시에와 더불어 ‘퐁타벤 화파’를 결성한다. 퐁타벤 화파의 목표는 인상주의를 극복하는 데에 있었다. 그들은 플렝 에르를 포기하고 뚜렷한 윤곽과 강렬한 색채로 화면을 구성하곤 했다.

이러한 퐁타벤 화파의 경향을 비평가 에두아르 뒤자르댕은 ‘클루아조니슴(cloisonnisme)’이라 명명했다. ‘클루아종(closin)’은 원래 공간을 구획하는 격벽이라는 뜻. 클루아조니슴은 형상을 마치 격벽처럼 두꺼운 테두리로 감싸고 그 안쪽을 표현적 색채로 채우는 화법을 가리킨다. 이때 화면은 3차원 공간의 환영이라기보다는 2차원 평면의 구성에 가까워져 중세의 스테인드글라스와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이렇게 대상에 두꺼운 윤곽선을 두르는 것은 인상주의나 신인상주의에서는 금기로 통했다. 이 기법을 창안한 에밀 베르나르와 루이 앙크탱은 원래 신인상주의로 작업을 하다가 거기에 환멸을 느껴 전향한 이들이었다. 고갱의 그림에 등장하는 두꺼운 윤곽선은 이들의 영향을 반영한다. (그림 1, 2, 3)

(그림 1) 클루아종

                                  

(그림 2) 초원의 브르타뉴 여인들. 에밀 베르나르. 1888년

                        

(그림 3) 에밀 베르나르의 초상이 있는 자화상. 폴 고갱. 1888년

이들을 특징짓는 또 다른 요소는 상징주의다. 인상주의에서 제재란 그림을 그리는 ‘구실’에 불과했지만, 고갱과 동료들은 그림이 항상 ‘무엇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실주의 이후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그려왔지만, 고갱과 동료들은 가시적 세계의 재현을 넘어 비가시적 관념의 표현을 추구했다. 고갱에게 [황색의 그리스도],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등 사실주의나 인상주의에서는 볼 수 없던 제재가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전통적 성화와 달리 이 두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중첩시켜 뭔가 알 수 없는 의미를 전달한다. (그림 4, 5)

(그림 4) 황색의 그리스도. 폴 고갱. 1889년

            

(그림 5)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폴 고갱. 1888년

이 두 경향은 곧 하나로 합쳐져 ‘종합주의(syntheitsme)’ 라는 흐름으로 발전한다. 고갱은 자신을 ‘종합주의자’라 불렀다고 한다. 종합주의는 흔히 대상의 외관에 대한 묘사, (1) 자연 형태의 외관의 묘사, (2) 제재를 통한 의미의 표현, (3) 선․색․형 자체의 자율성을 하나로 합치는 흐름으로 얘기된다. 첫째는 구상 회화 일반의 특성이고, 종합주의를 인상주의와 구별시켜주는 것은 역시 둘째와 셋째 요소다. 둘째는 제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의미를 드러내는 상징주의의 경향, 셋째는 형과 색을 재현의 의무에서 해방시켜 화면 위에서 자율적 조형의 요소로 다루는 경향을 가리킨다. 이는 당시 유행하던 자포니슴, 즉 일본 목판화의 대범한 색채 효과에 자극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고갱의 경우 자포니슴의 영향이 고흐만큼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히로시게를 베낀 고흐의 [꽃이 핀 오얏나무]를 고갱의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과 비교해보면 고갱 역시 자포니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목판화에서 형태는 표현적으로 왜곡되고, 색채는 실제보다 강렬하다. 형과 색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재현할 의무에서 풀려나 구성의 평면 위에서 자율적 요소가 된다. 이러한 외적 영향과 내적 동기가 하나로 어우러져 1890년을 전후하여 프랑스에서는 회화가 특정한 사물의 재현이기 이전에 평면 위의 색채의 형식적 배열이라는 ‘현대적’ 인식이 싹튼다. (그림 6)

(그림 6) 꽃이 핀 오얏나무. 빈센트 반 고흐. 1887년

인상주의 이래로 프랑스 화가들이 서구 밖의 전통에 눈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르네상스에서 출발한 서구 회화의 전통이 마침내 고갈되었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전의 화가들도 서구 밖으로 눈을 돌리곤 했다. 이를테면 낭만주의자들의 이국 취향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그들은 이국에서 제재만 가져왔을 뿐 그곳의 표현 방식을 취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후기 인상주의자들은 이국에서 아예 새로운 조형의 원리를 찾는다. (그림 7, 8)

(그림 7) 타히티의 두 여인. 폴 고갱. 1891년

                                   

(그림 8) 신의 날. 폴 고갱. 1894년

 

 


다음 호에 계속 ▶

 

목차
0. 고전미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고전미술의 붕괴
2. 유럽의 시대정신
3. 혁신을 위해 과거로
4.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5. 인상주의의 탄생
6. 순수 인상주의자들
7. 인상주의를 벗어나다
8. 색채와 공간의 분할
9. 현대미술을 예고하다
10. 지각에서 정신으로
11.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의 가교
12. 감각을 실현하라
13. 자연미에서 인공미로
14. 모더니즘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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