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해부학의 최고봉…200여 편의 논문은 모두 얼굴 해부학

연세대 치과대학 구강생물학교실 김희진 교수<사진>는 얼굴 해부학에서 김 교수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얼굴에서의 지도를 완성한 사람이 바로 김 교수이기 때문이다.

# 몸의 언어가 곧 해부학
김 교수는 ‘ㄱ’ 이라는 글자를 보면 낫이 생각나듯이 얼굴이나 몸의 구조를 보고 언어를 파악하는 것이 바로 해부학이라고 말한다. 하악의 경우 상악과 하악의 뼈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몸의 언어인 해부학이다. 언어에서 어떤 단어가 떠오르듯이 얼굴의 부위를 보면 구조가 떠오르게 된다는 논리다.

김 교수는 몸의 구조를 알아야 치료가 가능하며 몸의 언어가 곧 해부학이라고 말한다. 해부학자는 그것을 사진으로 분류해서 카테고리화시켜 변이를 찾거나 임상적 의의를 찾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해부학은 모든 의료인의 언어며 해부학 없이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하는 것이 언어이듯이 모든 의사나 치과의사들이 알아야 하는 언어가 바로 해부학이다.

# 얼굴 해부학 논문만 200편
해부학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 잡는 것도 김 교수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얼굴해부학에 관련된 논문만 200여편에 이른다. 그의 저서 Clinical Anatomy of the Face for Filler and Botulium Toxin은 보톡스가 치과의사의 영역이라는 데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는 치과의사가 가장 많이 아는 분야가 바로 얼굴이며 그 얼굴 해부학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얼굴부분에서의 해부학 논문에서 그의 인용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해부학으로 무엇을 하겠다라는 개념보다는 하다 보니까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니까 잘하게 된다’고 한다.

초보자로 들어오는 해부학자들을 익숙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의무이자 임무다. 그들이 교수가 되어 또 다른 누군가를 가르치게 된다는 그것이 그의 보람이라고 한다.

그의 활동 범위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30세에 교수가 된 김 교수는 워낙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되다 보니 시간이 지나도 할 게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는 임상해부학(clinical anatomy), 체질인류학(physical anthropology), 법의학(Forensic Medicine)을 연구하고 있다. 그의 강의에는 택스트가 없는 일러스트와 그림을 위주로 강의한다.

# 30세에 교수가 되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할 일이 많고 오히려 점점 더 바빠지는 것 같습니다”
미용 분야 해부학에서는 그를 얘기하지 않으면 말이 안 된다. 근래 10년 가까이 얼굴 미용에서의 해부학 대가가 바로 김 교수다. 의학이라는 큰 틀의 개념에서 해부학에 미용이라는 개념을 쓰고 있는 것이 그가 말하는 얼굴미용이다.

필러와 보톡스를 언급하면 꼭 떠올리는 기억이 있다고 한다. 지난 2010년 앨러간社 대표가 한국에 왔을 때 김성택 교수가 해부학의 대가라며 김희진 교수를 소개했다고 한다.

앨러간社 대표는 김희진 교수에게 10월에 광저우 강의를 요청했었는데 그날이 제자의 결혼식 주례가 있어 강의 제안을 거절했다. 앨러간社 대표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금도 1년의 반 이상을 해외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모로코에서 1천 6백명을 대상으로 한 강의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 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자유인(?)이다.

김 교수의 연구실은 일반적인 상식을 깨버렸다. 샤워실과 자전거, 기타 가운데 놓여진 수많은 책들과 사진들은 그의 54년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 정제된 것 같으면서도 정제되지 않은 자유로움이 곳곳에서 베어 난다. 그렇기에 그의 삶은 더 특별해 보인다.

# 내 전성기는 내일이며 1년 후
중 3때부터 기타를 치고 음악을 좋아했던 김 교수는 ‘중년의 괴물’이라는 그레이몬스 밴드그룹의 보컬이기도 한다. 작년에는 30회 공연을 했다. 그레이몬스 멤버들은 모두 프로다. 김 교수만이 아마추어지만 김 교수의 일정을 맞춰 공연을 하고 연습을 한다. 히든싱어 전인권 편에서 1등이 보컬이었으나 현재는 김 교수가 보컬이다.

“내 전성기는 내일이며 1년 후가 될 것입니다.”
김 교수는 아직도 TOP에 오른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다만 어디까지 오르는지 해보고자 하는 도전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어디까지 가는지 가 보자,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일이 적어지는 순간이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일을 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한때는 영하 5도에서 사이클을 타기도 했다. 2박 3일간 부산에서 판문점까지 자전거로 완주하기도 했었던 그는 남들이 많이 타니까 요즘은 타기 싫다고 한다.

그는 일상 속에서 일하면서 논문의 주제를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논문을 보지 말고 논문을 쓰라고 가르친다. 논문을 읽다 보면 그 사람의 주제를 따를 수밖에 없다. 논문을 따라 하는 형식이 아닌 우리 것을 인용하고 다른 사람을 인용하는 것과 다른 사람의 것을 인용하고 내 것을 인용하는 것과는 임팩트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김 교수의 수업에는 페이퍼 리딩이나 논문 리딩이 없다.

“오늘은 내일의 관점에서 봤을 때 과거가 되고 내일은 나의 미래이기 때문에 하고 있는 것들 모두가 미래이자 중요한 역사입니다.”
김 교수는 그렇게 오늘 또 한 장의 페이지에 열정이라는 발자취를 남겨가고 있었다.

 

김희진 교수 약력
● 연세대학교 치의학과 학사(1991)
● 연세대학교 치의학과 박사(1997)
● France Lille II University, Faculty of Medic ine 방문교수
● 現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구강생물학교실 교수
● 전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학생 부학장
● 현 동경치대 해부학교실 외래교수
● 현 Surgical and Radiologic Anatomy (European J of Clinical Anatomy) - 부편집장
● 현 Clinical Anatomy (USA) - Editorial Board
● 현 The Open Anatomy Journal - Editorial Board
● 현 대한치과의학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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