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 (17)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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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1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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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상주의를 벗어나다

본 지는 앞으로 수 회에 걸쳐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인상주의편을 연재하려고 한다. 인상주의는 미학사에 있어 그 의의는 상당하다. 현대미술의 시초가 되는 인상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곧 현대미술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진중권의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을 찾아가길 바란다. (편집자주)

지난 호에 이어 ▶

 

르누아르는 모네와 더불어 인상주의 언어의 발명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이다. 예를 들어, 그림자가 반사된 빛의 영향으로 주변 사물의 색채를 띠는 ‘확산반사’ 현상을 처음 발견한 것도 모네와 르누아르였고, '타시(tache)'라 하여 색깔이 다른 짧은 스크로크들을 캔버스 위에 병치시키는 방법을 처음 도입한 것도 이 두 사람이었다.

모네와 르누아르는 이젤을 나란히 세워놓고 같은 시점에서 같은 대상을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그렇게 완성된 두 그림은 종종 누가 그린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두 사람이 한 장소에서 그린 두 점의 [라 그르누예르]를 보면, 이미 이 시기에 두 사람이 인상주의 화풍을 거의 완성해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1, 2)

(그림 1) 라 그르누예르.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69년
(그림 1) 라 그르누예르.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69년

 

(그림 2) 라 그르누예르. 클로드 모네. 1869년
(그림 2) 라 그르누예르. 클로드 모네. 1869년

두 작품을 놓고 비교해보면 동일한 인상주의 화풍 속에서도 두 거장의 스타일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르누아르가 둥근 치즈 모양의 섬 위에서 연출되는 ‘장면’에 초점을 맞춘다면, 모네는 그 섬을 더 작게 배치함으로써 그곳의 전체적 ‘풍경’을 강조한다.

르누아르의 작품은 인물의 수도 많고 묘사도 개별화한 반면, 모네의 작품에서는 개별 형상들은 그저 거친 스트로크로 그 존재만 암시될 뿐이다. 모네가 ‘풍경’을 그린 그 장소와 그 시점에서 르누아르는 ‘풍속’을 그린 셈이다. 실제로 모네․피사로․시슬레 등 다른 인상주의자들과 달리 르누아르는 풍경보다 풍속을 즐겨 그리곤 했다. 관심이 주로 ‘현대의 도시 생활을 어떻게 화폭에 옮기는가’에 가 있기 때문이다.

르누아르의 풍속화는 모던 라이프의 스냅사진처럼 대도시에 사는 즐거움을 담고 있다. 그가 이렇게 모던 라이프의 회화적 증인이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의식적으로 살롱전을 멀리한 동료 화가들과 달리, 르누아르는 살롱에서 인정받기를 간절히 원했다.

당시에 살롱전은 크게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국가의 미학적․도덕적 이념을 보여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가와 수집가들에게 작품의 판매 시장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주류들의 세계인 살롱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한, 화가는 작품을 팔아 생활하기가 어려웠다. 당시에 르누아르는 종종 “열정은 매우 좋은 것이나 그것이 주린 배를 채워주지는 못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1874년 최초의 인상주의전에 전시된 작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당시 고객들에게 인상주의적 ‘지각’의 실험 따위는 애초에 이해의 한계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에게 친숙한 일상적 ‘제재’를 알아보기 쉽게 묘사한 작품을 좋아했다. 살롱을 위해 그린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에 그려진 [산책]은 당시에 고객이 좋아하던 제재가 어떤 것이었는지 보여준다. (그림 3)

(그림 3) 산책.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70년
(그림 3) 산책.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70년

생활고에 시달리던 르누아르는 부유층의 위촉으로 초상화, 특히 여인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비로소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게 된다. 르누아르가 동료들과 달리 주로 풍속화나 초상화로 모던 라이프의 스냅사진사가 된 것은 실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대중의 취향에 영합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림 4)

(그림 4) 조르주 샤르팡티에 부인.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76~1877년
(그림 4) 조르주 샤르팡티에 부인.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76~1877년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는 인상주의 화풍의 절정을 보여준다. 몽마르트르의 레스토랑 ‘물랭 들 라 갈레트’의 일요일 오후를 담은 이 작품은 르누아르 개인의 경력은 물론이고 인상주의 운동 전체에서도 중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당시 파리 시민들은 일요일마다 옷을 차려입고 이곳에서 술을 마시고 갈레트를 먹으며 저녁까지 춤을 추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 작품 역시 파리지앵의 실제 생활에 대한 인상주의적 스냅사진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그는 근처에 따로 아틀리에를 차렸다고 한다. 그림 속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친구나 모델들은 그 아틀리에에서 그린 것을 야외의 풍경에 합성해 집어넣은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림 5)

(그림 5)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76년
(그림 5)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76년

1880년대 중반 이후 르누아르는 초기의 인상주의와 결별하고 훨씬 더 규율 잡힌 형식으로 돌아간다. 결정적 계기는 1881년에 떠난 이탈리아 여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여행을 통해 라파엘로를 비롯한 르네상스 거장들의 걸작을 보고 그는 자신이 완전히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하게 된다.

1883년 경 르누아르는 화상(畵商)인 앙브루아즈 볼라르와 나눈 대화에서 자신이 예술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처했다고 토로한다. 그 이후 그의 작업은 형태보다 색채의 효과를 중시하는 인상주의에 등을 돌리고 고전주의로 향하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 ▶

 

목차
0. 고전미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고전미술의 붕괴
2. 유럽의 시대정신
3. 혁신을 위해 과거로
4.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5. 인상주의의 탄생
6. 순수 인상주의자들
7. 인상주의를 벗어나다
8. 색채와 공간의 분할
9. 현대미술을 예고하다
10. 지각에서 정신으로
11.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의 가교
12. 감각을 실현하라
13. 자연미에서 인공미로
14. 모더니즘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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