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 [Doctor's Dilemma]의 내용을 강명신 교수가 저자인 철학자 고로비츠 교수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각색하여 세미나비즈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편집자주)

 

강: “가치중립적 의학의 불가능성” 네 번째 시간인데요, 선생님! 지난 시간에는 의학이 가치중립적이라는 말이 어떤 뜻으로 쓰이는지 설명해주셨는데요. 의학외적인 가치가 환자진료에 부당하게 영향을 끼치게 해선 안 된다는 요지로 말씀하셨어요.

샘: 그랬죠. 소매치기라도 손을 다쳐서 왔으면 치료를 해야 한다는 말을 했죠.

강: 의학적인 지식과 기술을 의사 개인이 자기 가치관의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고 하셨고요!

샘: 다른 예를 들어볼게요. 부인과 진료를 받으러 온 여성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체외수정으로 의뢰된 환자였는데 막힌 난관을 수술로 치료하면 된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강: 그런데요, 선생님?

샘: 의사가 환자한테 수술이 성공하면 보통의 방법으로 임신이 된다고 이야기했죠. 그런데 결혼했는지 물어봤더니 이 여성이 미혼이라는 답했어요.

강: 그 질문을 꼭 해야 했나요? 물어볼 만한 자세한 상황이 있겠거니 생각하긴 했어요.

샘: 아무튼 그 여성은 아기 갖는 데 성공만 한다면 1년 정도 지나서 이 남자친구랑 결혼한다고 했어요. 의사는 임신하고 출산해서 키울 환경인지 생각해보라고 했어요.

강: 예. 그래도 의사가 자신의 개인적 가치를 개입시켜서 결정을 좌지우지해선 안 된다는 게 말씀하신 그 의학의 가치중립성이죠?

샘: 그렇습니다! 앞의 사례들은 지어낸 겁니다. 이번엔 실제사례에요. 미국의 대표적인 대학병원에는 불임클리닉이 다 있어요. 자궁경부로 정액을 직접 주입하는 시술, 인공정자주입술이 있는데요.

강: 네!

샘: 보통은 이런 곳에 올 땐 커플이 같이 오는데 어느 날 혼자 온 여성이 ‘사실은’ 남편이 없다고 말했어요. 듣고 보니 레즈비언 커플이었는데, 이 클리닉의 상담역인 정신과 의사가 좀 놀랐답니다. 그 때만해도 아주 낯선 일이었으니까요.

강: 그래서요? 커플 중에서 그 분이 임신을 하기로 해서 온 거네요?

샘: 그렇죠. 아이를 갖기로 결정한 상태에서 그 분 혼자 불임클리닉에 찾아온 거죠. 보통 하는 방법으로 임신하는 일도 고려하긴 했대요. 양심상 상대 레즈비언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그뿐 아니고, 상대 남성을 자기들 일에 도구로 이용하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대요. 결국 인공정액주입술로 임신하기로 했다고 했어요.

강: 생각을 많이 하고 내린 결정이었네요.

샘: 그렇죠. 그런데 보세요, 이 정신과 의사의 입장을 생각해보세요.

강: 글쎄요. 처음 닥친 상황이라 일단은 좀 어디다 물어보고 싶었을 것 같아요.

샘: 그 의사는 머리가 복잡해졌다고 해요. 해달라는 대로 추진하자니 클리닉에 있는 다른 동료들이 당장 반대를 할 것 같고, 사실 몇 명은 절대 반대할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강: 예. 조직의 다른 구성원들의 가치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네요.

샘: 그렇다고 대놓고 진료거부를 할 수 있었을까요?

 

강명신 교수는 연세대 치대를 졸업했으며 보건학 박사이자 한국의료윤리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연세대와 서울대를 거쳐 지금은 국립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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